이리 차이고 저리 치여도 기죽지 않는…밀레니얼의 강단

입력 2017-12-09 09:35   수정 2017-12-09 10:28

이리 차이고 저리 치여도 기죽지 않는…밀레니얼의 강단
신간 '불만의 품격'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느 날, 옆집 개의 맹렬한 짖음에 심장에 무리가 왔다. 나도 사족보행하며 똑같이 짖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새로 이사 간 집이 마음에 들었지만 단 한 가지 옆집 개 짖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던 저자는 인스타그램에 불만 섞인 소회를 살짝 과격하게 드러낸 토막글과 사진을 올린다.
여기에 "개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새끼라니…휴."라고 정색하는 댓글이 달리는데, 이게 서운했다. 저자는 "어떤 표현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그것이 나오게 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말을 보태는 것 역시 폭력"이라며 사뭇 준엄하게 나무란다.
그러면서 옆집에 직접 불만을 표시한 뒤에도 짖는 소리가 잦아들지 않자 "생명체를 들먹이며 한숨 쉬는 댓글 단 사람 옆집으로 개새끼를 이사 보내고 싶다"고 보탠다.
읽고 있자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흡인력 있게 끌고 가며 할 말을 다하는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신간 '불만의 품격'(웨일북 펴냄)에는 스스로를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우리"라 칭하는, 부당한 불편은 참지 못하는 결기 있는 저자의 세태에 대한 불만이 한가득 담겨 있다.
송년회 자리에서 연장자에게 친밀감의 표시로 반말을 섞었다가 무안을 당한 경험담에서 시작해 '박근혜 디스곡', 일간베스트(일베), 프랑스 잡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그리고 시큼한 자신 연애담 등등.
저자는 20대에 독립잡지 '월간잉여'를 창간한 최서윤 편집장이다. 보드게임인 '수저게임'을 개발했고 '건축학개론'에 불만을 품고 패러디 단편영화 '영화학개론'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JTBC의 '말하는 대로', '차이나는 클라스' 같은 TV 프로그램에도 나온다.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책 속에 언급된 이력을 보면 저자는 취업에 실패한 뒤 이리 차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한국형 밀레니얼'의 전형이다.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밀레니얼은, 극심한 취업난 속에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집 장만,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해 '3포', '5포'를 넘어 '7포 세대'로 불리는 한국의 젊은 세대와 정확히 겹친다.
하지만 저자는 대접받지 못하는 청년 세대가 가질 법한 박탈감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루저'로 규정당하길 거부하고 스스로를 '잉여'라 규정한다.
"잉여는 타자에 의해 폭력적으로 규정당하는 게 아닌, 스스로 자조하며 최초로 세상에 던지는 자아 선언이었다. 세상에 의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이것이 구조적 문제라는 시각, 잉여가 소수가 아니며, 너도 잉여고 나도 잉여라는 공감대."
저자는 폭넓은 성찰과 강단으로 사회 문제의 개선을 요구한다.
주로 권위주의와 남성우월주의에 젖은 기성세대로 향하는 저자의 불만은 거침없고 뾰족하고 격하지만 대체로 지당하다.
저자는 불만을 제기할 때도 저열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윤리적으로, 역지사지하며, 때로는 웃음과 재치를 잃지 않는 '품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84쪽. 14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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