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마다 정치인 현수막…'권선택 판례'가 만든 도심 풍경

입력 2017-12-13 06:00  

교차로마다 정치인 현수막…'권선택 판례'가 만든 도심 풍경
"도시미관 헤치고 통행 방해" vs "정치인의 사회적 활동"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정치인이나 선거 입지자들이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해 너도나도 현수막을 내걸면서 도심 거리가 몸살을 앓고 있다.
12일 대전 중구 서대전 네거리 일대에는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한다거나 따뜻한 연말을 보내라는 일상적인 내용부터 후원자를 모집하거나 예산을 확보했다는 등 정치적 색깔을 띤 내용 등 다양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현수막마다 정치인의 얼굴과 이름이 크게 적혀 있어 유권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정치인의 이름 알리기 현수막으로 비쳐졌다.
앞서 지난 추석에는 현직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명절 인사 현수막을 내걸었고, 지난달에는 주요 교차로마다 수능 응원을 빙자한 이름 알리기 현수막이 걸려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거리에 정치인 현수막이 우후죽순 날리며 '응원인지 홍보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과거에도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각종 현수막이 걸었지만, 이처럼 다양한 내용의 현수막이 대량으로 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해 정치인의 사회적 활동을 무조건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권선택 판례'가 거리 풍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지난해 6월 하급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된 권선택 당시 대전시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사건을 파기환송하는 과정에서 사전 선거운동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당시 "정치인이 인지도와 정치적 기반을 높이려는 활동은 당연히 보장돼야 민주적 정당성이 보장된다"며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정치 기반 넓히는 것을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치인의 일상적인 사회적 활동·정치적 활동이 인지도와 긍정적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도, 그 행위가 당선·낙선을 도모하는 의사가 표시되지 않는 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요지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정치인의 현수막 게시를 사전선거운동으로 판단했던 선관위도 새로운 현수막 처리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선거운동 180일 이전에 정치인 등의 이름과 사진 등이 포함된 현수막은 게시할 수 있다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정치인의 현수막 게시가 선거법을 위배하지는 않지만, 옥외광고물법까지 피할 수는 없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어 사실상 이들은 모두 불법 현수막이다.
허가받지 않은 현수막을 설치한 사람은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받을 수 있다.
이밖에 가로수나 횡단보도, 전철역 주변 도로 등에 이중 삼중으로 내걸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각을 방해하고 있고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수막을 단속하는 일선 지자체는 정치인들의 이런 현수막 게시가 불법이라는 점에는 인식하면서도 실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전의 한 구청 관계자는 "현수막이 워낙 많아 떼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데다 누구는 떼고 누구는 놔두느냐는 민원을 넣는 일도 있어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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