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무술년 개 이야기

입력 2018-01-07 08:01   수정 2018-01-07 12:34

[연합이매진] 무술년 개 이야기
견공(犬公), 충성심 뽐내온 인간의 오랜 '절친'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2018년 새해는 간지(干支)로 견공(犬公), 즉 개의 해다. 개는 인간과 함께한 가장 오래된 가축이자 지금은 고양이와 함께 가장 선호되는 반려동물이다. 하지만 충성심에서는 어떤 동물도 따르지 못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인을 위해 목숨을 던진 개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개는 천하게 취급받는 비천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요즘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심지어 함께 사는 주인을 물어 뉴스가 되기도 한다. 흔히 개의 첫 번째 덕목으로 알려진 '충성' '의로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하지만 개는 견종과 관계없이 상대가 위협적이라고 판단하면 공격을 감행한다고 한다. 특히 사냥 본능이 남아 있는 맹견은 공격 성향이 높다. 반려동물로 들이기에 앞서 훈련을 통한 사회화가 필요한 이유다. 선진국에서는 견종에 따라 입양을 제한하고 반려견의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는 시간으로는 오후 7~9시, 달로는 음력 9월, 방향으로는 서북서에 해당하는 시간신이자 방위신이다. 개가 날이 어두워져서 집을 지키기 시작하는 시간이 바로 오후 7~9시다. 즉 개는 이 시간에 서북서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동물신인 것이다. 우리나라 토종개인 삽살개는 이름 자체에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삽'은 없앤다 또는 쫓는다는 뜻이고, '살'은 귀신이나 액운을 의미한다.
개띠해는 무술(戊戌), 경술(庚戌). 임술(壬戌), 갑술(甲戌), 병술(丙戌) 순으로 12년마다 돌아온다. 무술년(戊戌年)은 천간(天干)의 무(戊)와 지지(地支)의 술(戌)이 만난 해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가 조합해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이루기 때문에 매 해의 천간지지는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무술년도 60년 만에 돌아온 개의 해이다. 특히 10개의 천간 두 개씩에는 다섯 방향을 나타내는 오방의 색이 하나씩 연결된다. 즉 갑(甲)·을(乙)은 청색, 병(丙)·정(丁)은 적색, 무(戊)·기(己)는 황색, 경(庚)·신(辛)은 백색, 임(壬)·계(癸)는 흑색을 상징한다. 무술년을 '황금 개띠해'라고 하는 이유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황금 개띠라는 개념에 민속학적 근거는 없다"며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거나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진 용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저승과 이승의 매개자

야생의 개를 언제부터 집에서 키웠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략 1만2천~2만 년 전 고대 동양이나 이집트로 추정된다. 1만4천 년 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개과에 속하는 여우, 이리의 뼈가 나타나고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개머리뼈로 만든 조각물이 보고됐다. 동삼동 패총에서는 개머리뼈가 출토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개와 인간이 가까웠거나 함께 생활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개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부여 시대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보면 부여의 관직 명칭으로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등과 함께 '구가'(狗加)가 나온다. 다른 가축과 함께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개를 집에서 기르는 것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해모수와 통한 유화부인이 낳은 알을 동부여의 금와왕이 개와 돼지에게 줘도 먹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개가 가축으로 키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는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자이거나 무덤을 지키는 동물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관(棺) 위에 개의 조각상을 얹었는데, 이는 개(또는 자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사자(死者)를 미라로 만들고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상(商)·은(殷)·주(周)나라 때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관 아래에 개를 매장하기도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용총에는 말을 탄 관복 차림의 남자 앞쪽에서 목걸이를 두른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그림이 있다. 각저총에서는 목에 검은 띠를 두른 누렁이가 짖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의 안내자로서의 개는 신화에도 나온다. 제주도 차사본풀이에서는 하얀 강아지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강님이란 인물이 저승에 왔다가 이승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염라대왕은 하얀색 강아지 한 마리와 떡 세 덩어리를 내준다. 강아지가 싫증 낼 때마다 떡을 주며 따라가다 개에 물려 못에 빠졌는데 눈을 떠보니 이승에 와 있었다는 전설이다.


◇ 불행·죽음 상징하기도

개는 불행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라 진평왕 때 흰색 개가 궁중의 담장 위에 올라갔는데 얼마 후 모반이 일어났고, 성덕왕 때는 개가 궁성의 고루(鼓樓)에 올라 사흘간 울었더니 왕이 죽었다. 백제 의자왕 때는 개가 사비성 강둑에 이르러 왕궁을 보고 짖어대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1개월 후 백제가 망했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도 개와 관련해 몸을 삼가거나 꺼려서 피하는 것이 많다. '개가 가옥 위로 올라가면 큰 흉사가 있다' '개가 풀을 먹으면 큰물이 진다' '개가 문 앞의 흙을 파면 불길하다' '산모가 개고기를 먹으면 부정을 탄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등 다양한 속신(束身)과 금기가 있다.
개와 관련된 속담이나 욕을 보면 좋은 것은 별로 없다. 개소리, 개망신 등 '개'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아진다. '개도 기르면 은혜를 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한다' 같은 좋은 속담도 있지만 '오뉴월 개 팔자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점잖은 개가 똥을 먹는다'처럼 좋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불가(佛家)에서는 개고기를 멀리한다. 조상이나 저승에서 길을 안내하는 삼목대왕의 환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 이거인이라는 사람이 눈이 셋 달린 개를 우연히 만나 정성껏 키우다가 죽자 장사를 후하게 치러줬다고 한다. 이후 이거인이 죽어 저승의 첫 관문에서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을 만났다. 염라대왕에게 가서 삼목대왕이 가르쳐준 대로 '법보의 고귀함을 판에 새겨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자, 염라대왕은 그를 이승으로 돌려보낸다. 삼목대왕은 그로 하여금 팔만대장경을 완성하게 했다고 한다. 사찰이 주로 산속에 있어 개고기를 먹고 절에 가면 호랑이에게 화를 입을 염려가 있어 멀리한다는 설도 있다.


◇ 개를 사랑한 지도자들

지난여름 유기견 '토리'가 퍼스트 도그가 됐다. 풍산개 '마루', 고양이 '찡찡이'와 한 식구로 청와대에서 지내며 국내 애견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를 보면 개는 수많은 지도자, 권력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애견 사랑은 널리 알려졌다.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 동석하기도 하고 반려견을 선물로 받기도 한다. 일본은 2011년 아키타 암컷 '유메'를, 불가리아는 2013년 불가리안 셰퍼드종 '버피'를 선물했다. 지난해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은 생일 선물로 중앙아시아 셰퍼드 '알바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반려견 중 푸틴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래브라도 '코니'. 이 개는 2007년 개 공포증이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앞에 나타나기도 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들의 개 사랑도 유별나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역대 대통령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개를 길렀다고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면 항상 퍼스트 도그에 관심이 집중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핏불테리어 '피트', 조지 W 부시의 '바니'는 백악관 관계자나 출입기자 등을 물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개를 들이지 않아 25대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 이후 120년 만에 개를 키우지 않는 대통령이 됐다.
아돌프 히틀러의 반려견인 독일산 셰퍼드 '블론디'도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는 동물을 사랑하는 따뜻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블론디를 선전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자살하기 하루 전날 자살용 독약 캡슐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블론디에게 먹여 죽게 했다고 한다.

◇ 개 팔자는 정말 상팔자일까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1천만을 넘는다. 전체 반려동물 가구 중 80% 이상은 개를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병원이 성업 중이고, 마트에는 반려동물 용품과 먹거리가 별도 공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 전용 호텔, 펜션, 놀이터, 장례식장이 있고, 전문적으로 돌봐주는 펫시터도 있다. 옛날 찬밥이나 얻어먹고 차가운 겨울에 난장에서 지내야 했던 천덕꾸러기가 더는 아니다.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유기견은 10만 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그 중 다시 가족을 찾는 경우는 35%. 동물보호단체나 사설 보호소가 아닌 지자체 보호소로 간 개들은 10~20일이면 안락사 된다. 개를 차에 끌고 달리고, 때리거나 학대한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개고기는 여전히 논란이다. 개의 지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난제는 많다.


◇ 전통 그림과 유물 속의 개

예로부터 개는 각종 미술품의 좋은 소재였다. 개가 인간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가장 친근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 토우 중에는 개를 묘사한 것들이 있다. 두 귀를 세워 경계하거나 꼬리를 말아 올리고, 혀를 빼물고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등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개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나무 아래에 개가 있는 그림이 많은데 이는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조선 초기 화가인 이암의 '화조구자도'에 보면 흰둥이, 누렁이, 검둥이 등 세 마리 강아지가 등장한다. 흰둥이는 전염병과 병도깨비, 잡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불러오며 누렁이는 풍년과 다산을 상징한다. 액을 막기 위해 개 그림을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개띠 해를 맞아 개 관련 유물이나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회도 마련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무술년 개띠 해 특별전 '공존과 동행, 개'를 2월 25일까지 연다. '인간의 수호동물' '인간의 반려동물'로 전시를 구성해 개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을 보여준다. 김두량의 '젖 먹이는 개' 외에 '개 형상 토우 장식 굽다리접시' '당삼목구' 등 전통 유물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안내견' '인명구조견' '군견' 관련 물품, 인간과 개 이야기를 담은 작품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을 전면 개편하면서 개 동물화와 풍속화 16건을 보여주는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 전(展)을 3월까지 연다. 조선 초기 화가인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 화려한 채색의 '십이지신도', 쇠사슬에 묶인 채 기둥 밑에 엎드려 있는 '사나운 개', 날쌔고 영리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매사냥에 나서는 '매사냥', 김득신의 '달을 보고 짖는 개' 등을 볼 수 있다.

◇ 대형 사고·사건 많았던 개의 해

개의 해에는 유독 대형 사고와 사건이 많았다. 1970년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했고, 1994년에는 성수대교 붕괴,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충주호 유람선 화재가 일어났다. 2006년에는 서해대교에서 29중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해 11명이 죽고 54명이 부상했다.
근현대의 가장 큰 사건은 1910년 일제의 강압으로 이뤄진 한일병합조약 체결이다. 이로써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됐다. 1934년에는 시인 김소월이 '개벽' 지에 '진달래꽃'을 발표했고, 1934년에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 첫 작품이 조선중앙일보에 소개됐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남산 1호 터널이 개통했고,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 현실에 저항하며 분신 사망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KBO)가 출범했고, 1994년에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심근경색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세계적으로는 1898년 퀴리 부부가 라듐을 발견했고, 1994년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06년에는 사담 후세인의 교수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올해 우리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벤트는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6월 18일에는 광역·기초단체장을 뽑는 제7회 전국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가 진행된다. 6월 14일~7월 15일에는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 1월 18일에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한다. 러시아와 브라질에서는 대선이,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는 총선이 예정돼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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