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국립등대박물관

입력 2018-01-09 08:01  

[연합이매진] 국립등대박물관
'바다 길잡이' 등대 역사가 숨 쉬는 공간

(포항=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넓은 바다 위 작은 섬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등대(燈臺).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항해자에게는 생존의 길잡이인 등대를 생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이 바람이 저 바다를 덮어/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이여 바다를 비춘다"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삼았던 등대는 안전한 바닷길을 인도하며 해상 교통을 책임지는 '바다의 지킴이'를 넘어서 감성을 자극하는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줄 뿐만 아니라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기원전 280년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파로스등대'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가 1903년 6월 1일 불을 밝힌 이후 남해안 최초인 거문도등대(1905), 부산 영도등대(1906), 국토 최서남단의 가거도등대(1907), 서해 최북단 섬의 소청도등대(1908), 한반도 최동단의 호미곶등대(1908), 유럽풍의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가덕도등대(1909), 최남단의 마라도등대(1915), 우리 땅을 지키는 독도등대(1954) 등이 주요 항만과 어항, 섬에 세워졌다.
호랑이 꼬리를 뜻하는 호미(虎尾)곶에 세워진 호미곶등대(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는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어진 팔각 구조물이다. 내부는 6층으로 높이는 26.4m. 하얀색 등대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李花文)이 새겨져 있고, 출입문과 창문은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양식을 닮았다. 건립 당시의 이름은 동외곶등대였고, 이후 장기압등대와 장기곶등대를 거쳐 2002년 호미곶등대로 바뀌었다. 110년의 역사를 품은 등대 바로 옆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1985년 문을 연 국내 유일의 등대 전문박물관이다.



◇ 우리나라 110년 등대 역사 한눈에

국립등대박물관은 유물관, 역사관, 체험관 3개 동과 야외전시장, 테마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유물관은 정보검색코너, 항로표지 역사관, 항로표지유물관, 등대원 생활관, 등대사료관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구분해 놓았다.
박물관 안내센터 바로 앞에는 팔미도 등대를 시작으로 불을 밝힌 순서대로 전국의 48개 등대 사진이 걸려 있다. 안내센터 왼쪽의 정보검색실에서는 관람 전에 소장된 유물을 미리 살펴볼 수 있다. 오른쪽의 항로표지역사관에 들어서면 세계와 우리나라 항로표지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 입구에서 세계 각국의 등대와 우리나라 등대를 3D 영상으로 보고 난 뒤 세계 등대 역사를 연대기별로 알아볼 수 있다.
이집트의 파로스등대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으나 1100년과 1307년 있었던 두 번의 대지진으로 파괴돼 현재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2세기에 만들어진 스페인의 라 코루나등대는 전쟁과 약탈로 수백 년간 황폐해졌다가 18세기에 수리해 재점등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다. 1810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에 세워진 벨록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다 등대'이고, 중국의 류허등대(970)·에스토니아의 코푸등대(1531)·미국의 보스턴등대(1716)는 각 나라의 최초 등대다.
우리나라 항로표지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유사' '삼국사기' '선화봉사고려도경'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 항로표지 관련 내용이 기록돼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기 48년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유천간(留天干)을 망산도(현재 경남 지해시 소재)에 보내서 멀리 인도의 아유타국으로부터 천명을 받고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해 김해까지 오게 되는 허황옥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천간은 붉은색 깃발을 단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을 피워 허황옥 일행이 탄 배를 인도하였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항로표지 관련 내용이 있다.
항로표지역사관의 끄트머리에서는 1953년부터 1979년까지 목포의 홍도등대에서 사용했던 수은조식회전등명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물을 통해 등명기 원리를 관찰할 수 있다. 등명기는 전구식 광원에서 나오는 불빛을 유리 프리즘 렌즈를 이용해 굴절·반사시켜 원거리까지 비추는 '등대의 눈'이다. 와이어로프에 연결된 무거운 추가 내려가면서 수은통에 떠 있는 렌즈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켜 불빛을 뻗치게 한다. 그 불빛을 따라 수많은 선박과 어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간다.



항로표지 유물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빛을 이용한 광파표지와 소리를 이용한 음파표지, 전파를 이용한 전파표지 장비 등 각양각색의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다. 광파표지는 야간에 빛을 이용하여 위치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등대, 등표, 조사등, 지향등, 등주, 등부표, 교량등 등을 말하는데, 광파표지 중의 하나가 바로 등대다.
등명기는 석유등·아세틸렌 가스등·발광다이오드(LED) 램프 등을 사용해서 나온 빛을 렌즈 또는 반사경을 통해 굴절·반사시켜 외부로 비추는 조명기구다. 등명기를 돌리기 위해 지금은 모터를 이용하지만, 과거에는 치차(톱니바퀴)를 사용했다고 한다.
법성포 등대에서 사용한 아세틸렌 가스등, 1903년에 제작된 부동등, 1908년 영국에서 제작된 모터식 회전식 등명기, 석유와 가스를 광원으로 사용한 등명기 렌즈, 국내 최초로 개발된 회전식 대형등명기(KRB-375)의 렌즈 등을 살펴보면 등명기의 발전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 등대지기의 삶은 어땠을까

등대원 생활관에서는 칠흑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 밤새 빛을 비추며 이 일을 필생의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등대지기의 삶과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모스부호기, 목욕탕 솥, 등대 수은병, 등대원 교육과정 수료증서와 임명장, 등대 업무일지, 1973년 9월 월급봉투 명세서(2만7천50원) 등 등대원의 생활과 업무 등을 알 수 있는 유물과 문서, 사진이 전시돼 있다.
'등대원의 하루'라는 패널에는 "아득히 멀고 외로운 섬, 바다를 향해, 세상을 항해 빛을 밝히는 등대 그곳에는 말없이 등대를 지키는 사람, 등대원이 있다. 여명이 밝아 오고 먼동이 틀 때면 등댓불을 소등하고 해상의 기상상태를 관측하면서 소장을 중심으로 3명이 24시간 3교대로 하루를 시작한다. 배들에게 소리로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무(霧)신호기와 고정밀 위치정보를 제공하는 위성항법보정시스템 등 장비를 매일 살펴보고 주변의 무인등대와 등표를 일일이 감시하는 것도 등대원의 몫이다.…(중략)…오늘도 그들의 따뜻한 마음은 뱃길을 인도하고 세상을 비추는 생명의 불빛으로 빛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등대원의 하루'를 읽다보면 남도의 섬 '구명도'에서 묵묵히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 재우와 치매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조창인의 소설 '등대지기'가 떠오른다. 현재 전국 곳곳에는 방파제등대를 포함해 3천 개 넘는 등대가 있는데 이 중 등대원이 상주하는 유인등대는 38곳이다.
홍경숙 등대박물관 전시해설사는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과 해양항법시스템 '로란-C' 등 첨단 항해 장비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모든 선박이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 고장이 발생할 수 있어 등대의 중요성은 변치 않았다"고 말한다.
등대사료관은 등대의 역사와 관련된 각종 문서와 선박 모형, 음파표지 등을 통해 항로표지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항로표지측정선 및 부표 정비선인 한빛호·등명기를 갖춘 등대선·우리나라 최초 등대 순시선 광제호의 모형, 1970년대 사용한 독도 등대의 태양전지, 짙은 안개로 앞이 안 보일 때 종을 때려 소리로 선박에 등대 위치를 알려주는 무종(Fog Bell)·모터사이렌 나팔·전기혼 나팔 등에는 항로표지의 역사가 녹아 있다. 특히 무종은 안개와 눈으로 밤새 쉼 없이 종을 쳐야 했던 등대원의 고충을 생각하게 하는 유물이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관

청기와가 인상적인 역사관은 항해의 시작, 등대 역사, 등대 건축 등 3가지 주제공간으로 구성된다. '항해의 시작' 코너는 고대 항해에서 대항해 시대까지 바다를 향한 인류의 항로 개척과 문명의 발달 과정을 보여준다. '등대 역사' 공간은 우리나라 등대와 세계 주요 등대 등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항로표지 기술 발달과 변천 과정을 담았다. '등대 건축' 공간은 패널과 도표, 모형을 통해 시대별 등대 건축의 다양성과 구조적 특징을 알려준다. 등대는 등탑과 등롱으로 구성되는데, 등탑은 원형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 다양하다. 선박이 대양을 항해할 때 태양·달·별의 고도를 측정해 현재 위치를 구하는 데 사용했던 육분의(六分儀)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관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체험공간으로 나뉜다. 제주 어부의 불빛인 '도대불' 모형이 관람객을 맞은 아날로그 체험공간에서는 등대 블록 쌓기, 무종·모터사이렌·전기혼·공기사이렌 등 소리 체험 등이 인기 코너다. 도대불은 20세기 초 제주지역에서 이용된 옛 민간 등대 시설로 솔칵(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이나 생선 기름, 석유 등을 이용해 불을 밝혔다. 해 질 무렵 뱃일 나가는 어부들이 불을 켰고, 아침에 배가 들어오면서 껐다고 한다.
디지털 체험공간에는 스크린 터치로 나만의 등대 만들기, 모스부호와 내비게이션(DGPS)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특히 항해사가 돼 항로표지를 보고 직접 선박을 운항해보는 시뮬레이션 체험은 인상적이다. 방파제 등대는 색깔에 따라 방향을 표시하는 역할이 있는데 항구로 입항하는 기준으로 볼 때 항로의 오른쪽에 있는 붉은색 등대는 항로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다니라는 의미이고, 흰색 등대는 항구가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야외전시장에는 공기사이렌 나팔과 공기 압축기·장거리 무선항법 송신장비 등이 전시돼 있다. 테마공원에는 목포구등대·팔미도등대·독도등대·우도등대·울산의 화암추등대·영도등대, 통영의 도남항 동방파제 등이 미니어처로 만들어져 있다.
등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은 호미곶 해맞이광장과 호미곶등대를 바로 옆에 두고 있어 연간 9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다.



[관람시간] 09:00∼18:00(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 가능), 입장은 무료
[휴관] 매주 월요일, 설날과 추석 당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
[문의] ☎ 054-284-4857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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