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가 '백의 천사'… 미군 첫 여성장군 헤이스 사망

입력 2018-01-10 16:00   수정 2018-01-10 18:31

한국전 참가 '백의 천사'… 미군 첫 여성장군 헤이스 사망
간호장교로 한국서 두 차례 근무, 97세 나이로 운명
군 간호 분야 '선구자'… 유리천장 깨는 데도 앞장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미국의 첫 여성 장군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가,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하는 데 공헌한 애나 메 헤이스(97) 예비역 준장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워싱턴 포스트, 밀리터리 타임스 등 미언론에 따르면 1920년 뉴욕 시에서 구세군 장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헤이스는 간호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2년 육군 간호장교로 임관했다. 임관 후 헤이스는 인도 아삼 지역의 레도에 파견돼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미얀마 전선 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다친 미군들을 간호했다.

종전 이후에도 군에 남은 헤이스는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4 야전병원 소속으로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제4 야전병원은 1950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2만5천 명이 넘는 미군 부상자들을 보살폈다.
1951년 4월 일본 도쿄의 미 육군병원 외과 수술실로 전속된 헤이스는 이곳에서 인력, 보급품 및 시설 관리체계를 담당하면서 효율적인 군 병원 관리와 환자 보호 개선책 등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훗날 "태평양전과 한국전을 비교하면 한국전 상황이 훨씬 나빴다"며 "정글전 위주인 태평양전에 비해 한국전에서는 수술실 내에서도 보급품과 보온장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소령으로 워싱턴 D.C의 월터 리드 육군병원 응급실 수간호장교로 근무하면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등 'VIP' 환자들을 잘 보살펴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헤이스는 전쟁으로 다니지 못한 컬럼비아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1960년 자원해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부산의 제11 후송병원 수간호장교로 부임한 그는 1962년 귀국 때까지 열심히 근무했다.
귀국해 중령으로 진급한 헤이스는 간호병과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1965년 베트남전이 격화되자 현지 파견 간호장교 실태 파악에 나섰다. 현지 조사 결과 2천 명가량의 간호장교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시급한 시정을 요구해 관철했다.
이 덕택에 헤이스는 대령 진급과 함께 1967년 제13대 육군 간호병과장으로 취임했다. 간호병과장으로 있으면서 그는 여러 차례 베트남의 격전지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파악해 정책에 반영했다.
이런 헌신 덕택에 헤이스는 1970년 6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장군(준장)이 됐다. 당시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육군 참모총장은 "서구 사회에서 잔 다르크 이후 처음으로 장군이 된 여성"이라고 추켜세웠다.
헤이스는 이듬해 8월 퇴역할 때까지 간호장교 등 여군의 복무 제도 개선 등 유리천장을 깨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sh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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