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평창올림픽에 북한 어린이합창단이 온다면…

입력 2018-03-28 16:28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평창올림픽에 북한 어린이합창단이 온다면…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오늘날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 걸쳐 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1498년 인스브루크에서 빈으로 황궁을 옮기며 궁정 악단과 합창단도 함께 이주시킨 뒤 합창단원에 소년 6명을 넣으라고 명령했다. 당시 여성은 교회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는데, 변성기 이전의 소년에게 소프라노 음역을 맡긴 것이다. 이것이 세계적인 명성과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의 기원이다.

무려 520년의 역사를 지닌 빈소년합창단은 10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모차르트, 프란츠 슈베르트의 이름을 딴 4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빈에 남아 호프부르크궁 성당 주일 미사에서 성가를 부르고 나머지 세 팀은 해외 공연에 나선다. 슈베르트도 단원이었고 브루크너·하이든·모차르트는 빈소년합창단을 위한 노래를 지었다. 빈소년합창단은 세계적인 거장 토스카니니에게서 '천사의 소리'리는 극찬을 받았으며 1년에 300차례 이상의 해외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해군 복장을 본뜬 단복(세일러복)이 상징하듯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훈련으로 학대 논란이 불거지고 성추행 의혹도 제기돼 2010년 단장이 사과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빈소년합창단은 한국과 인연도 깊다.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에서 1969년 3월 처음 무대에 오른 이래 지금까지 27차례 내한해 130여 차례 공연을 펼쳤고 최근에는 해마다 신년음악회를 꾸미고 있다. 올해도 19일 하남 문화예술회관, 20일 천안 예술의전당, 21일 인천 문화예술회관에 이어 23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24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26일 함안 문화예술회관,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돌며 '천상의 화음'을 들려준다. 한국인으로는 조윤상 군이 2010년 처음 입단했고, 현재 활동 중인 배진욱·손현서 군이 내한팀에 합류했다. 김보미 연세대 교수는 2012년 동양인이자 여성 최초로 지휘자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내한공연을 펼치는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은 프랑스가 내세우는 문화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1907년 창단됐으며 흰색 예복에 나무 십자가 목걸이를 건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평화의 사도'란 칭호를 얻었다. 독일의 ?츠소년합창단은 빈소년합창단,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과 함께 세계 3대 소년합창단으로 꼽힌다. 영국의 리베라(세인트필립스) 소년합창단과 모나코왕실 소년합창단 등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들 못지않은 어린이합창단들이 있다.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어스가 한경직 목사 등과 함께 만든 구호단체 세계기독교선명회(현 월드비전) 한국지부가 1960년 고아들을 모아 창단한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월드비전합창단으로 개명한 선명회합창단은 1961년부터 해외 공연에 나섰고, 1978년 영국 BBC 주최 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1975년에는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미국 영화 'One to One'에 출연했으며, 2008년 단원들의 이야기가 '유앤유'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소프라노 홍혜경과 카운터테너 이동규, 가수 박남정이 선명회합창단 단원 출신이다. 한국월드비전은 2000년부터 3년마다 세계어린이합창제도 열고 있다.

리틀엔젤스는 선명회합창단보다 2년 늦게 출발했다. 합창뿐만 아니라 부채춤, 북춤, 농악, 가야금병창 등 전통예술을 선보여 인기가 높았고 한국을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1965년 미국 게티즈버그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위한 특별공연을 꾸민 것을 시작으로 70여 개국에서 공연을 펼치고 TV 등에 출연했다. 언론은 이들을 '관직 없는 어린 대사'로 불렀다. 그러나 개신교가 이단시하는 통일교가 운영 주체여서 지금까지 비난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1975년에는 밀수 연루 의혹에 휘말려 일부 기성교회로부터 '국제밀수천사단'이라고 모욕당하는 일도 있었다.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발레리나 문훈숙·강수진, 소프라노 신영옥, 탤런트 황정음·박한별 등을 배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합창단은 다문화가정 자녀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이다. 한국다문화센터가 다문화 자녀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학교 적응을 도우려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화합을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됐으며, 나아가 국제 친선과 인류 평화 사절로 활약하고 있다. 2009년 창단 이듬해부터 G20 정상회담 특별 만찬,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식,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유엔본부 특별공연, 바티칸 베드로성당 초청공연 등에서 '무지갯빛 화음'을 선보였다. 청소년 패션모델 한현민과 배유진이 이곳을 거쳤다. 처음엔 서울 초등학교 수십 군데를 돌아도 지원자를 모으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오디션 때마다 가입 희망자가 넘쳐난다. 다른 지역에서도 다문화어린이합창단이 속속 생겨나 전국다문화어린이합창경연대회가 해마다 열린다.

내 목소리만 잘 내려고 하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없다.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맞춰나가야 한다. 그래서 합창은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치유와 감동을 경험한다. 단원들이 천진난만한 어린이라면 효과는 더 높아진다. 실력과 기교가 뛰어난 성인 합창단들을 제치고 소년합창단들이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은 140명에 이르는 대규모 예술단을 보내기로 했다. 남북한 화해를 도모하고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어린이합창단을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측 어린이들과 합동 무대를 꾸미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1998년 5월 리틀엔젤스는 평양에서 공연을 펼치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예술단과 '통일의 노래'를 합창했다. 2년 뒤 북한 소년예술단은 서울로 답방해 관객을 매료시켰다. 남북 어린이들은 놀이공원도 함께 구경하며 금세 허물없이 친해져 잠시나마 '작은 통일'을 이뤘다. 평창올림픽에서도 남북한 어린이들이 손잡고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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