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에 흠뻑 취하는 여행기 '셰익스피어도 결코…'

입력 2018-01-28 09:00   수정 2018-01-28 09:13

찰스 부코스키에 흠뻑 취하는 여행기 '셰익스피어도 결코…'
독일·프랑스 여행하며 쓴 에세이와 사진 87장 묶은 책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열정 가득한 미치광이'로 불린 독일계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1920∼1994)는 전 세계에 마니아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이 최근 잇달아 소개되면서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담은 그의 작품 세계는 코드가 맞는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는데, 이번에 부코스키의 팬들이 특히 반가워할 만한 책이 나왔다.
마치 부코스키와 바로 옆에서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생생한 에세이에 사진까지 더한 책 '셰익스피어도 결코 이러지 않았다(원제 'Shakespeare Never Did This', 자음과모음)'가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부코스키가 1978년 프랑스와 독일의 몇몇 도시를 다니며 쓴 짧은 여행기다. 이 여행에는 그의 연인 '린다 리'와 사진가 마이클 몽포트가 동행했다. 몽포트가 여행 내내 찍은 87장의 사진과 부코스키가 여행을 하며 쓴 시 11편도 함께 담겼다.
알코올중독자라 할 수 있는 부코스키는 이 여행에서도 끊임없이 와인과 맥주를 마셔대고 술주정에 괴짜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기내 와인을 몽땅 싹쓸이해 마신다. 프랑스 편집자들과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숙취 때문에 언론 인터뷰도 하기 힘들다.
"그때만 해도 인터뷰가 나흘에 열두 건 잡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터뷰는 오전에 할 때가 가장 힘들다. 숙취에 시달리며 역류하는 맥주를 삼키기 바쁘다. 아뇨, 난 내가 왜 작가인지 모르겠어요. 아뇨, 내 글은 내가 아는 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뭘 중요하게 생각하냐고요? 좋은 와인, 원활한 배설, 아침에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기.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요? 한번 해보자는 거지 뭐야. 지금 나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거잖소, 쉰여덟 살이나 처먹고? 술이나 한잔 사줘요." (11쪽)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하는데, 거침없이 솔직한 이야기로 사회자를 당황하게 하고 방송 도중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기까지 한다. 이런 엉뚱한 사건 사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벼운 농담으로 들려주는 그의 글은 읽을수록 자꾸 웃음이 난다.
"그들은 나를 분장사 앞에 앉혔다. 분장사는 내게 갖가지 분을 발라댔지만, 분은 얼마 못 가 내 얼굴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름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나를 내보냈다." (12쪽)
조금의 거짓이나 위선 없이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 미치광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누구보다 날카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나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사교댄스, 롤러코스터 타기, 동물원 구경, 소풍 가기, 영화 보러 가기, 천문관 관람, 텔레비전 시청, 야구 경기 관람 등. (중략) 거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자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글을 쓰고 또 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햄버거를 씹는 강간범의 생각과 기분, 공장 근무자의 생활, 길바닥의 삶, 빈자와 불구자와 미치광이의 방 같은 하찮은 것들을 쓴다." (54쪽)



아무도 기차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 역에서 한참을 헤매고, 비행기 표 예약이 잘못돼 낭패를 보고, 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짐을 떨어뜨려 어느 노파를 다치게 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미국 집으로 돌아온다. "지옥 체험기"라고 부르는 이 여행기를 그는 왜 썼을까.
"나는 노먼 메일러가 달에 착륙한 인간에 대해 <라이프>에 글을 쓰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그에게 강렬한 연민을 느꼈는데, 그가 그 대가로 받았던 원고료를 생각하니 그걸로 베이컨도 사고 집세도 냈겠구나, 그렇게 먹고살았겠지 싶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때 그가 받은 원고료가 100만 달러라고 했다. 운은 내가 더 좋았다. 계약금도 없고 출판이 된다는 보장도 없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폭삭 망한다고 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해왔다. 왼손으로 날카로운 잽을 계속 날리면서 오른손으로 목표를 명중하는…." (159쪽)
'빈민가의 계관시인'으로도 불린 그는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대공황과 전쟁을 겪고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주유소 직원, 집배원 등의 일을 하며 하층민으로 살았다. 마흔아홉 살이 돼서야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시집과 장편소설, 산문집 등 60여 권의 책을 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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