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넘어온 뒤 곧바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

입력 2018-02-01 11:00  

"목숨 걸고 넘어온 뒤 곧바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
귀순병 출신 주승현씨가 분단 사회 조명한 '조난자들' 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한 북한군 병사의 극적인 귀순이 화제가 되면서 2002년 비슷한 경로로 넘어온 주승현 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무장지대의 북한군 심리전 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주씨는 어느 겨울밤 휴전선을 넘었다. 아버지 죽음과 군관학교 입학 보류 소식이 22살 젊은이를 흔들어 놓았다. 25분 만에 DMZ를 건너 무사히 귀순한 그는 연세대에서 통일학으로 석·박사를 마친 뒤 현재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등 직함도 여럿이다.
이력만 보면 남한에서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 같지만, 정작 주씨는 신간 '조난자들'(생각의힘 펴냄)에서 "목숨을 걸고 넘어온 뒤 곧바로 '잉여인간'으로 전락했다"고 회고했다. 책은 귀순 당시 과정부터 시작해 지난 10년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한반도 '조난자'의 삶을 펼쳐 보인다.
"분단선이라는 경계를 넘어온 귀순자가 서야 했던 곳은 남북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위치였고, 내가 마주한 것은 그날의 겨울밤보다도 더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치열한 생존과 경쟁의 세계였다."
6년간 숱하게 접했던 남한의 대북방송도, 한국 사회로 진입하는 통로인 하나원에서의 교육도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환대받지 못했다.
귀순 직후 만난 담당관은 그에게 "너 왜 왔어?"라고 물었다. 하나원 퇴소 후 겨우 한 일식당에 취직했지만 더 많이 일하고도 더 적은 월급을 받아야 했다. 저자는 "노력과 대가는 비례한다는 상식적인 논리조차 탈북민에게는 예외였다"고 말한다. 수많은 탈북민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탈북민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불쑥 드러나는 북한(민)을 향한 적대감, "못나고 가난한 아우"를 대하는 듯한 묘한 승자적 감정을 지적하는 저자의 펜끝이 날카롭다.
저자는 귀순 병사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의 일방적인 신상 공개, 상업주의를 되풀이하던 언론을 비판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탈북병사의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사회라는 새로운 사선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개인정보가 공개된 그는 온갖 혐오나 편견에 맞서 위태로운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분단의 슬픔은 이 지점에서부터 거듭 시작된다."
책은 2부에서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조난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북송 재일동포들과 정대세를 비롯한 그 후예들, 이중간첩 이수근, 독일 망명→입북→탈북을 반복한 오길남, 비운의 망명객 황장엽 등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들을 호명하면서 "한반도 분단 체제는 수많은 조난자를 양산했다"라면서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잠재적인 조난자의 운명을 배면에 깔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00쪽. 1만4천 원.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