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서 대규모 반파시즘 시위…"실업, 난민 아닌 정부 탓"

입력 2018-02-11 06:00  

이탈리아서 대규모 반파시즘 시위…"실업, 난민 아닌 정부 탓"
흑인 겨냥한 마체라타 극우청년 총격 사건에 저항의 목소리 분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내달 4일 실시되는 총선을 앞두고 반(反)난민, 반(反)외국인 정서가 커지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에 반대 목소리를 분출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10일 오후(현지시간) 중부 마체라타에서는 반파시스트 시위대 1만5천여 명이 운집, '모든 파시즘, 인종주의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을 펼쳤다.



마체라타는 1주일 전인 지난 3일 나치즘과 파시즘을 신봉하는 극우 청년 루카 트라이니(28)가 자신의 차를 타고 시내를 돌며 2시간에 걸쳐 흑인 10여 명에게 총격을 가해, 이 가운데 흑인 6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이 사건 사흘 전에는 인근 마약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18세 이탈리아 소녀가 토막 살해된 채 가방 안의 시신으로 발견돼 이탈리아를 발칵 뒤집어놓은 도시이기도 하다.
극우정당인 동맹당 소속으로 작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트라이니는 소녀를 죽인 용의자로 나이지리아 난민 출신의 불법 마약판매상이 지목되자 이 소녀의 복수를 위해 흑인들에게만 총구를 겨눴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인구 4만3천 명의 조용한 소도시인 이 곳에서 벌어진 이 두 사건은 지중해를 건너 밀려드는 난민 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탈리아 사회의 단면을 극명히 드러내며 다가올 총선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이날 시위에는 파시즘을 창시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하던 과거로 역행하려는 분위기에 저항하는 일반 시민, 좌파 정당, 노조,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이탈리아 언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들은 "실업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민자나 난민이 아니라 정부를 비난해야 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탈리아 사회에 최근 급속히 퍼지고 있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사상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2010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에서 그리스 다음 정도의 수준으로 치솟자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난민에게 쏠리며, 반난민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반파시즘 집회 참가를 위해 피렌체에서 수 시간을 걸려 도착한 은퇴자 마팔다 콰르투는 AFP통신에 "현재 이탈리아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차 있다"며 "최근 몇 년 간 우리는 극우 세력이 번영하도록 놔뒀지만, 이제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중부 피사에서 정원사로 일하는 줄리아노 덴티(40)는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헌법을 두고 있다. 이 법은 지켜져야 하고, 파시스트 이념을 단속하는 법이 적용되며 한다"며 이날 시위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마체라타에서 나고 자랐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세네갈계 이민 2세인 젠나바 디오프(23)는 "이곳에는 항상 긴장과 인종차별이 있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며 "며칠 전에는 극우 단체 회원들로부터 '죽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마체라타 시 당국은 혹시 일어날지 모를 파시즘 지지자들과 반파시즘 시위대의 충돌을 우려해 당초에는 이날 시위를 불허하려 했으나, 방침을 바꿨다. 대신에 시내의 대중 교통 서비스를 중단하고, 각급 학교에는 휴교 명령을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곳에서는 지난 주 극우 청년의 총격 사건 직후 파시즘 추종 단체인 포르차 이탈리아 소속 극단주의자 수 십 명이 결집, 흑인을 쏜 이 청년에 연대를 표명하며 난민 반대를 외치다가 경찰과 격렬히 충돌한 바 있다.
이날 마체라타뿐 아니라 밀라노, 볼로냐, 토리노 등 대도시에서도 파시즘과 외국인 혐오주의에 반대하는 유사한 시위가 이어졌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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