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렙코 등 세계적 성악가들 거친 자리…"사시나무처럼 떨기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조금도 생각을 못 했던 일이었어요. 작년 말 '올림픽 찬가'를 부를 후보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었거든요. 정말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울려 퍼진 '올림픽 찬가'의 주인공은 소프라노 황수미(32)였다.
그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가 디자인한 동양적이면서도 화려한 한복 드레스를 입고 그리스어로 올림픽 정신과 승리를 기원하는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특유의 서정적이고 힘 있는 그의 노래와 아름다운 외관이 화제가 되며 그의 이름은 한때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0일 전화로 만난 그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특히 '성악이 이토록 매력 있는 장르인지 몰랐다'는 이야기가 가장 감사하다"고 말했다.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 불린 이 노래는 1958년 공식 찬가로 제정돼 4년마다 개회식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간 플라시도 도밍고, 몽세라 카바예, 알프레도 크라우스 등 세계적 성악가들이 개회식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오페라 디바'로 불리는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러시아어로 이 노래를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어로 부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리스어와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계로 방송되기 때문에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온화함이 담긴 노래를 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당일에는 강한 바람이나 돌발 상황 가능성을 고려해 라이브가 아닌 녹음으로 무대가 진행됐다. 이건 다른 모든 개회식 때도 동일하게 적용돼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지침이다.
라이브가 아닐지라도, 세계 시민이 지켜보는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큰 긴장과 압박을 낳았다.
"본 무대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어요. 콩쿠르 때도 그렇게 떨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세계적인 무대를 내가 망치면 안 된다', '한국 성악을 대표하는 무대'라는 책임감이 막중했던 것 같아요. 다만 무대에 올라가니 긴장이 가라앉더군요. 최종 녹음 파일을 듣고 IOC 측에서 이제껏 들은 '올림픽 찬가'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죠. 하하."

그는 대중들에게 다소 낯선 얼굴일 수 있지만, 클래식계에서는 '차세대 소프라노'로 익히 알려진 이름이다.
서울대 음대, 독일 뮌헨 국립음대 등에서 수학한 그는 쇼팽·차이콥스키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에서 2014년 우승을 거머쥐며 스프트라이트를 받았다. 현재 독일 본 극장(Theater Bonn)에서 솔리스트로 활약 중이다.
올림픽 개회식 무대는 그를 빛나게 하는 이력으로 따라다닐 테지만, 정작 그는 "인지도나 인기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회라기보단 영광스러운 무대였죠. 좁게는 성악, 넓게는 클래식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그로써 만족합니다."
올해는 한국 무대도 다양하게 선다. 3~4월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4월 27~28일 베르크의 '일곱 개의 초기 가곡'을 서울시향과 한국 초연,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2주년 무대 등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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