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은 왜의 침공에 대한 강박감으로 동해에 묻혔다"

입력 2018-03-26 07:50   수정 2018-03-26 09:26

"문무왕은 왜의 침공에 대한 강박감으로 동해에 묻혔다"
김창겸 박사 '신라와 바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고 여러 신하가 유언에 따라 동해 어구 큰 바위에 장사 지냈다. 속설에 전하기를 왕이 용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그 바위를 대왕석(大王石)이라고 불렀다."(삼국사기)
경주 감은사지 동쪽 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은 신비로운 문화재다. 문무왕(재위 661∼681)이 세상을 떠난 지 1천30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른바 '대왕암'으로도 불리는 문무대왕릉이 실제로 문무왕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설화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 고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신라사학회장을 지낸 김창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 부단장은 신라사를 바다와 연계해 쓴 신간 '신라와 바다'에서 문무대왕릉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근거로 문무왕이 통일 과정에서 수많은 해전을 치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일례가 663년에 발발한 백강(白江·금강 혹은 동진강) 전투다. 왜의 군선 1천 척이 백강에 정박하자 신라와 당의 연합 수군은 수차례 접전을 펼친 끝에 왜를 대파했다. 또 고구려가 멸망할 때도 신라 수군은 당과 보조를 맞춰 공격했고, 나당전쟁에서도 두 나라는 수상에서 전투를 벌였다.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한 문무왕은 통일 직후인 678년 선박과 해양을 전담하는 부서인 '선부'(船府)를 설치하고, 장관인 선부령을 임명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선부는 여러 차례 해전을 치르면서 파손되거나 낡은 선박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새로운 선박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통일전쟁을 거치면서 확고해진 문무왕의 호국정신은 해양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가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고 밝힌 유언은 왜와 백제 유민 세력의 침공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감에서 기인했다"며 "문무대왕릉 이야기는 사실에 기반하나 후대에 윤색이 가미됐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에서 신라를 시기에 따라 상대(上代), 중대(中代), 하대(下代)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를 동해, 서해, 남해 중심으로 살폈다.
문무대왕릉 외에도 신라가 당에 파견한 사신의 항로와 해양 경험, 8∼9세기 신라 정치사회의 변화와 장보고, 9세기 일본 서부 연안에 나타난 신라인들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이 실렸다.
문현. 392쪽. 2만8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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