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범국민위, 403명 참가한 퍼포먼스 개최…6일엔 촛불문화제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제주 4·3 70주년인 3일 오후 4시 3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수십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처럼 온몸에 잿빛 진흙을 뒤집어쓴 403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땅에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격변한 세상이 잘 적응되지 않는 듯 두리번거렸다.
오래전에 무언가 끔찍한 일을 겪거나 목격한 듯 고통스러워하며 발작하거나 눈, 귀, 입을 두 손으로 다급히 막아대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로 각자 중얼거리며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돈 뒤 중앙에 모였다. 초등학생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봇짐이나 아이 형상을 한 포대기를 든 이들도 보였다.
4·3 추모곡인 '애기동백꽃의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지자, 가만히 노래에 귀 기울이던 이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자 얼굴에 딱딱하게 굳었던 진흙이 조금씩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 한두 사람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존재와 함께 묻혔던 이름을 정명(正名)하는 듯 보였다. 이어 이들은 고함을 치며 웃옷을 뜯어 버리고는 풍물패와 함께 한풀이하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춤췄다.
춤출 때는 손에 오색 천과 대형 만장이 들렸다. 만장에는 '완전한 자주독립', '통일정부 수립', '친일 모리배 척결'이라고 쓰여 있었다.

403명은 차례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쪽에 설치된 4·3 분향소에 국화꽃을 헌화하며 퍼포먼스를 마쳤다.
분향소에는 4·3으로 목숨을 잃은 약 1만5천명의 이름이 적힌 하얀 천이 둘렸다. 그 위에는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글씨가 청와대 방향을 향해 적혀 있었다.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대한민국 심장인 광화문에서 70년간 짓눌렸던 제주의 감정을 분출하고, 아직 '항쟁'이나 '사건' 같은 이름이 붙지 않은 4·3을 정명할 때가 됐다고 알리기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참여한 403명 중에 30여명은 연극인·무용수였지만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한 일반인이었다. 제주 출신인 양윤호 영화감독과 류성 연극 연출가,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등이 기획·연출했다.

광화문을 지나던 시민들은 하나같이 퍼포먼스에 시선을 빼앗겼다.
분향소에 헌화하고 분향하는 시민도 많았다. 이날 오전부터 남녀노소 다양한 시민들이 분향소에 발길을 이었다.
세 자녀를 데리고 분향소를 찾은 부부 이현욱(42)·홍정아(40)씨는 "4·3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억울한 희생자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들의 한이 풀리도록 공부하고 추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들렀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왔다는 대학생 황모(24)씨는 "이번에 4·3을 처음 알았는데 그동안 몰랐다는 점이 희생자분들께 죄송스러웠다"면서 "국가에서 진상을 밝히고 피해 보상에 나서고, 역사로 잘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분향소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추념식이 동시 생중계됐다.
2001년 제주 4·3 진상 보고서 작성기획단 단장을 맡았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우상호·전해철 의원이 참석했다.
4·3범국민위는 토요일인 7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광화문 국민 촛불 문화제 '70년, 끝나지 않는 노래'를 개최한다. 가수 안치환과 멜로망스, 전인권 등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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