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은 왜 교만해질까…우연의 과학

입력 2018-04-17 07:31  

성공한 사람들은 왜 교만해질까…우연의 과학
신간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성공한 사람일수록 교만해지기가 쉽다.
이는 천성이 그렇거나 표리가 부동한 몇몇 사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게 첨단 인지과학과 심리학의 연구 결과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100팀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불공정한 모노폴리 게임'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팀마다 참가자를 부유한 쪽과 가난한 쪽으로 나눠 부유한 쪽에는 처음부터 두 배의 돈을 주고 경기 중 보너스도 두 배로 받을 수 있게 했다.
게임의 승패는 시작 전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실제 게임 결과도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놀라운 건 게임이 진행될수록 부유한 참가자들이 점점 무례해져 자신의 부와 능력을 과시하고 상대 참가자를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승리는 불공정한 게임룰 때문인 것이 명백했지만, 승리자들은 자신의 현명한 판단과 전략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신간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동양북스 펴냄)는 행복한 우연과 자신의 성취를 혼동하는 인간의 내밀한 인지적 편향을 여러 각도로 들춰 보인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치명적인 병에 걸리지 않고 적절한 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면 우리는 이를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플로리안 아이그너다. 그의 특기는 미신이나 신비주의적 주장들을 과학적으로 파헤쳐 반박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도 작용한다. 하지만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우연적 요소가 작용함에도, 우리는 이를 간과한 채 온전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흔히들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사람은 사실 거의 모든 것, 정말 우연히 발생하는 일조차 특별한 인과관계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다. 특히 자기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조차 자신의 행동과 직접 연결지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조상들이 가뭄 뒤에 비가 온 것이 기우제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이나, 경기 때마다 특정 색깔의 속옷을 입는 운동선수, 자신이 관전하는 경기는 항상 지게 된다고 믿는 징크스 같은 것들이 비근한 예다.
재밌는 건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동물들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고픈 비둘기들을 먹이를 주는 기계와 함께 우리 안에 넣어놓고 관찰한 실험에서, 비둘기들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부리로 바닥을 쪼다가 기계에서 먹이가 나오면 자신의 행동과 먹이 획득을 연관 짓는 모습을 보였다.
책은 나아가 어디에서나 쉽게 인과관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나 바람과는 달리, 인간의 삶이나 세상 만물이 강력한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폭넓은 과학 지식과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일깨운다.
세상과 개인의 운명이 신이 주관하는 정연한 질서 속에 있고, 우주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신봉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우리가 이 같은 전통적인,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편하게 빠져드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이제는 나비의 날갯짓만으로도 지구 반대편의 날씨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뒤죽박죽이 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상식이 됐다. 자연은 날씨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어 인간의 능력으론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익숙한 원인과 결과의 고정된 결합이 현대 물리학에선 깨진 듯하다. 과학자들은 전자나 광자와 같은 미시적 세계가 오직 확률로서만 존재하는 불확정의 세계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의 우주, 지구, 물질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게 하는 많은 자연상수들의 기적적인 균형과 인간의 진화에 비춰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우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길고 긴 사유의 고리 끝에서 우연을 존재론적 문제에서 인식론적 문제로 전환한다.
"우연성은 우주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카테고리다. 우연은 우리가 결국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은 상당히 단조로워질 것이다. 우연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 속에서 다채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유리 옮김. 288쪽. 1만4천500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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