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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찰 화장실 문화는 어땠을까…'대가람의 뒷간'展

입력 2018-04-17 16:59   수정 2018-04-17 17:06

조선시대 사찰 화장실 문화는 어땠을까…'대가람의 뒷간'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기도 양주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 출신 승려 지공이 세웠다는 절이다. 이후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절을 크게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절로 꼽혔고, 세조 비인 정희왕후와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후원해 크게 번성했다. 한때 262칸 규모 전각에 3천여 명이 머물렀던 회암사는 조선 후기에 폐허로 변했다.
1997년부터 이뤄진 발굴조사를 통해 회암사지에서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됐다. 2005년에는 사찰의 뒷간(화장실) 터와 길이 12.8m, 폭 2.2m, 깊이 3.6m의 석실이 나왔다. 이 화장실은 한 번에 20여 명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넓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회암사 뒷간의 발굴 과정을 설명하고 관련 유물을 선보이는 기획전 '대가람의 뒷간'을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서 19일부터 7월 1일까지 연다고 17일 밝혔다.
두 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청동 다기와 액체를 담는 그릇인 백자 장군을 비롯해 이동식 변기인 매우틀, 분뇨를 논밭에 뿌릴 때 사용한 귀때동이 등 자료 108건, 128점이 나온다.
크게 3부로 나뉜 전시의 1부에서는 회암사지 뒷간을 발견한 과정을 조명한다. 회암사지 석실은 용도를 알지 못했으나, 토양 성분 분석에서 기생충이 나오면서 화장실로 밝혀졌다.
이어 2부 '뒷간을 이해하다'에서는 회암사지 뒷간을 이용한 사람들과 분뇨를 처리하는 유물을 소개하고, 3부 '뒷간을 상상하다'에서는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등에 남아 있는 해우소를 바탕으로 재현한 회암사지 뒷간을 살펴볼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회암사 뒷간은 왕성했던 시기의 회암사 규모와 사찰의 생활문화를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며 "이번 전시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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