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내 인생은 산 넘어 산…어머니가 큰 힘"①

입력 2018-04-24 20:11  

조용필 "내 인생은 산 넘어 산…어머니가 큰 힘"①
'대타'로 시작한 노래, 50주년까지…"유럽 여행 한번 못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가왕'에게 음악 인생 50년은 "산 넘어 산"이었다.
"산을 넘으면 들이나 평야가 나타나야 하는데,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왔죠. 이것의 연속이 내 삶이지 않을까…."
"매번 일 끝나면 유럽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했는데 평생 한 번 못 가봤다"는 조용필(68)은 "올해도 공연을 끝내면 다시 앨범 신곡을 만들고 다시 공연이 남아있고. 그것의 연속으로 살아왔다"고 돌아봤다.
진통의 삶이었지만 그는 반세기를 돌아 이름 석 자가 '국민 브랜드'가 되는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다. 1970년대 밴드 시절을 거쳐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를 평정하며 1980년대 가수왕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방송 중단을 선언하고 콘서트 무대로 돌아간 뒤 2000년대 공연형 가수의 롤모델로 만개했다.
또 다량의 자작곡을 쓰면서 록과 클래식, 록과 국악 등의 융합을 시도했고 민요와 동요까지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기타로 작곡하고 늘 연필과 지우개로 작사하면서 사운드 디자인과 노랫말 끝음절 발음 하나까지 고심하고, 소리내기에 최적화한 체중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자기 관리는 남달랐다. 특히 한결같은 겸손함과 스스로에 유독 엄격한 면모는 그의 아우라를 이루는데 한몫했다.
데뷔 50주년에 즈음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YPC프로덕션에서 만난 조용필은 천생 뮤지션이었다. 대화 마디마다 떠오르는 히트곡이 한 소절씩 입에서 흘러나왔고, 넥(Neck)에 '필'(弼)이라고 써진 일렉 기타를 잡으면 절로 손이 움직였다.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벤처스의 '파이프라인'(Pipeline)을 연주해 보인 그는 "어린 내게 이 곡의 기타 연주가 엄청나게 충격이었거든"이라며 미소를 띄었다.


◇ "벤처스·애니멀스 기타 소리에 충격…대타로 시작한 노래"
출발은 시쳇말로 '대타'였다.
기타리스트를 꿈꾸며 1968년 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해 미8군 무대에 선 시절. 보컬의 60~70%를 맡은 베이스기타가 군대 영장이 나와 3일 만에 나가자 밴드에는 보컬이 부재했다. 결국 조용필이 대타로 이틀 만에 팝송 가사를 익혀 노래를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미군 병사가 '내일이 내 생일인데 (미국 블루스 가수) 바비 블랜드의 '리드 미 온'(Lead Me On)을 불러달라'면서 '백판'을 갖다 줬죠. 이튿날 그 노래를 불러주니 너무 좋아하면서 맥주 몇 박스를 주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김트리오, 그룹 25, 조용필과그림자 등의 밴드를 하면서도 제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룹 벤처스와 애니멀스의 기타 소리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오게 할 정도로 음악적인 동기 부여가 됐다.
그는 "기타의 영향은 벤처스의 '상하이 트위스트'와 애니멀스의 '더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The House of the Rising Sun)의 인트로 기타 연주였다"며 "우리 세대에게 벤처스의 '파이프라인', '상하이 트위스트', '불독'은 엄청나게 충격이었다. '저런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도 아니고 그저 '저걸 나도 치고 싶다'였다. 그래서 처음 잡은 게 형(조영일)의 기타였다"고 떠올렸다.
집안 반대와 의지가 충돌하던 때의 고민은 조용필과그림자 시절의 노래 '나의 길'(1976)에서도 엿보인다. 작가 유현종 씨가 조용필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가사다.
'내가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날 내가 두 번째 길을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중략) 하지만 어머니 낯선 길은 언제나 저를 유혹했고 그때마다 작은 소년은 미아가 되었습니다/ (중략) 이 길을 가다 보면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는 아침이 올 거예요, 어머니'('나의 길' 중)
그는 "조용필과그림자 시절 대한극장에서 공연을 꽤 했는데 그때 오프닝 곡이었다"며 "기억은 어렴풋한데, (집을 나와 음악생활을 하던 중) 내가 영장이 나왔다. 아버지께 인사를 못 하고 어머니에게만 이야기하고 입대해 3주간 훈련을 받고 방위병으로 배치됐다. 아버지는 날 버린 자식으로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알아서 해라,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그때 용서하시지 않았냐란 생각이 든다"고 기억했다.


◇ 쉼없는 시도는 음악적인 관심 반영…'자존심' '아시아의 불꽃' 다시 들으니 신선"
이전에 취입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1976년 반향을 얻으면서 솔로로 도약한 그는 1980년 1집 '창밖의 여자'를 시작으로 2013년 19집 '헬로'까지 총 19장의 앨범을 내며 LP와 CD, 디지털 음원 시대를 횡단했다.
생명력의 비결은 단연 음악이었다. 그는 록에 판소리('자존심')를 버무리고 록에 뮤지컬과 오페라에 대한 애정('태양의 눈', '도시의 오페라')을 쏟아내고 민요('한오백년', '간양록)와 디스코('단발머리'), '펑크'('못찾겠다 꾀꼬리') 등을 들려주며 장르에 갇히지 않았다.
내레이션을 삽입한 대곡('킬리만자로의 표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을 시도하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개탄하는 그의 심정을 국내 첫 여성 영화제작자 고(故) 전옥숙 씨가 가사로 옮긴 '서울 1987년' 같은 시대의 노래도 불렀다. 19집의 '헬로'와 '바운스'는 젊은 세대를 흡수하는 '파격'이었다.
모두 그때마다 그의 호기심과 관심이 반영된 음악들이었다.
"그 말이 정확해요. 예컨대 4집의 '자존심'은 국악+현대음악(팝)인데 '이 마음은 사랑일까 미련일까 착각일까' 부분의 이런 음계를 당시 안 썼거든요. 또 코드가 바뀌면서 '말을 할까 돌아서 보면 당신은 저만큼 있고~'란 부분은 판소리 음계죠. 이걸 합한 곡으로 그때 동생(조종순)이 가사를 썼어요."


레퍼토리 정리를 할 때면 새삼스레 '내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나?' 하는 곡들도 있다. 최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조용필 편에서 김경호가 우승한 7집 '아시아의 불꽃'이다. 그는 "녹화 이후 다시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호텔에서 통기타 하나로 이걸 만들었지?'란 생각을 했다. 누군가 '어떻게 코드를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묻길래 하다 보니 그렇게 나왔다고 했다"고 웃었다.
성공에 적응할수록 시도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법한데, 그는 조용한 성격과 달리 음악에서는 과감했다. 그는 '이 곡은 되겠다, 안되겠다'는 판단이 선다면서 느낌이 적중한 곡으로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 '촛불'을 꼽았다.
"'촛불'은 정윤희 씨가 주연한 드라마 '축복'의 주제가로 만들었는데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란 도입부터 느낌이 좋았어요. 주위에 들려줬을 때 요즘 말로 '대박이다' 하면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괜찮은데?'라고 하면 안 되더라고요. 하하."
'자존심'과 8집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예상을 깨고 히트한 노래들이다. 그의 노래 중에는 타이틀곡이 아닌 앨범의 뒷트랙이지만 히트곡이 꽤 있다.
그는 "전, 두세 번째 좋은 곡을 타이틀로 올리고 진짜 좋은 노래는 앨범 뒷순서로 내린다"며 "'비련'도 4집의 9번째 트랙이다. 타이틀곡은 우선으로 들어볼 테고, 한 번쯤 앨범을 죽 듣다가 '어 좋은데?'란 곡이 나와야 전체를 듣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악과 개인사의 거리를 둔 그지만 예외인 노래들도 있다. 어린 조카를 떠올리며 만든 10집의 '아이 러브 수지'나 1991년 어머니를 여읜 이듬해 낸 14집의 '고독한 러너', 부인 안진현 씨와 사별한 2003년 발표한 18집의 '진'(珍)이다.
그는 "음악과 나를 연관시키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면서도 "'아이 러브 수지'는 형(조영일) 부부가 미국으로 가면서 내가 어린 조카 수지를 5년가량 데리고 살았는데, 정이 많이 들었을 때 뉴욕으로 떠나서 작곡한 노래"라고 했다.
'고독한 러너'는 어머니를 여읜 마음이 심겨 있고 '진'은 차마 직접 만들지 못한 듯 이태윤이 작곡하고 양인자가 작사했다.
"어머니의 위치와 힘은 굉장한 것이에요. 야단을 맞아도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죠. 어머니가 1991년 돌아가셨을 때 마치 고아처럼 이제 내가 혼자 살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어머니와 부인이 고향인 경기도 화성) 선산에 위아래로 같이 있어요. 가끔 찾아가 봅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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