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포용도 후퇴…작년 총선 '빛바랜 승리' 후 리더십 지속 상처
"메르켈 정치적 자산 고갈, 메르켈 시대 마지막 장에 들어섰다"
국내외 비판 비등…총선서 난민정책 등에 대한 불분명한 입장이 '부메랑'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유럽의 '여제(女帝)'로 자리매김하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총선의 '빛바랜 승리' 이후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유럽의 지도자로 주목받았지만, 내우외환으로 '무터(엄마) 러더십'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특히 2015년 가을 국경을 개방해 이듬해까지 10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결단 이후 사회통합 정책이 미흡하면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대연정 내 기독사회당과의 충돌 속에서 난민 강경책을 상당히 수용,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난민 포용책에서 후퇴한 것이다.
애초 기독민주당을 이끄는 메르켈 총리는 기사당 대표인 호르트스 제호퍼 내무장관이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망명 신청이 된 난민을 되돌려보내는 정책을 내놓자 반대했다.
그러고선 EU 정상회의에서 주도적으로 나서 역외 국경을 강화하고 합동난민심사센터를 마련하는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더구나 스페인과 그리스 등 10여 개국과 개별적 협상으로 해당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한 뒤 독일에 입국한 난민을 돌려보내기로 해 기사당의 의견을 상당히 반영했다.
그럼에도 제호퍼 장관이 이에 만족할 수 없다며 사퇴카드를 꺼내 들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치자, 메르켈 총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에 난민 송환을 위한 수용시설을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한 발 더 물러섰다.
제호퍼 장관의 사퇴로 기사당이 대연정을 이탈해 결국 대연정이 붕괴할 수 있는 위기를 봉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에 내부에서 각종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제호퍼 장관의 반란으로 인한 정국 혼란을 신중하게 관망해오던 녹색당과 좌파당은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며 메르켈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체 바이델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연방하원에서 정부 난맥상을 이유로 들어 메르켈 총리에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해외에서도 뉴욕타임스는 난민포용 정책을 펼치면서 유럽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기수 역할을 했던 메르켈 총리가 정치적 급반전을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책연구기관인 독일마셜펀드의 베를린 사무소장이자 전직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였던 토마스 클레인-브로코프는 "메르켈의 정치적 자산은 고갈됐다"며 "이제 메르켈 시대의 마지막 장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슈피겔 온라인은 사설에서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문제의 발단을 찾았다.
메르켈 총리가 총선 캠페인에서 난민 문제와 유럽연합(EU) 통합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책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투표를 통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지 않아 결국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난민 문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쟁점화를 피하면서 '수면유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웹사이트에 올린 사설에서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에 앞서 메르켈 총리는 작년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기민·기사 연합의 득표율이 32.9%에 그치면서 웃지 못했다. 이전 총선보다 8.6% 포인트나 떨어졌다.
연정을 구성하는 데에도 애로를 겪으며 위상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총선 후 6개월 만에 우여곡절 끝에 사회민주당이 참여해 다시 대연정을 구성했지만, 초반부터 불협화음이 나왔다.
독일에 정착한 난민의 해외 가족을 데려오는 기준과 장기실업자 대상 실업부조제도인 '하르츠 Ⅳ'의 개혁 문제를 놓고 기사당과 사민당이 갈등을 노출했다.
메르켈 총리가 교통정리에 나서 가까스로 봉합했지만, 이번엔 제호퍼 장관의 난민 강경책으로 내홍에 빠지게 된 것이다.
메르켈 총리와 제호퍼 장관의 난민정책 합의안은 5일(현지시간) 대연정 3당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수용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메르켈 총리의 앞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일 전망이다.
기사당이 오는 10월 '텃밭'인 바이에른 주(州)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최근 부진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추가로 보수적인 정책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
외교적으로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원활하게 EU 개혁안을 만들어 EU 정상회의에서 통과시키기도 쉽지 않은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갈등을 조정해나가는 점도 메르켈 총리가 풀어가야 할 어려운 숙제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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