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우먼파워] ③SM엔터테인먼트 민희진 이사

입력 2018-07-11 06:00  

[음악계 우먼파워] ③SM엔터테인먼트 민희진 이사
샤이니·엑소의 남다른 이미지 창조…"비주얼은 K팝 촉매제 역할"
평사원에서 이사로…"치열하게 일했지만 즐거웠죠"

[※ 편집자 주 = 세계 음악시장에서 K팝의 위상은 크게 변화했습니다.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나아가는 단계로, 그 과정에는 스태프부터 경영진에 이르는 많은 여성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음악시장의 '큰손'인 여성 팬덤의 마음을 잘 아는 건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는 음악·공연계에서 우먼 파워를 가감 없이 발휘하는 리더들을 만나 음악 한류를 이끄는 노하우를 세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1995년 설립된 SM엔터테인먼트는 1996년 H.O.T.를 시작으로 수많은 그룹을 배출했다. 1990년대 말 국내에 아이돌 시대를 연 뒤 2000년대 아시아를 주름잡았고, 2010년대 유럽과 북남미까지 K팝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이 같은 성과를 낸 데는 음악 못지않게 남다른 비주얼이 한몫했다. 소녀시대·샤이니·에프엑스·엑소의 아트워크는 늘 파격적이었다. '한국인이 이렇게 예쁘고 잘생겼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샤이니가 지난달 정규 6집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누가 봐도 샤이니는 파릇파릇하고 싱싱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항상 트렌드를 반걸음 앞서간 비주얼 덕분이었다.
SM의 남다른 비주얼을 창조한 민희진(39) 크리에이티브 총괄 이사를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2002년 공채 평사원으로 입사한 민 이사는 2017년 3월 이사회에서 등기 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미대생 시절, 야근을 밥 먹듯 하던 막내 사원에서 출발해 국내 대표 기획사 SM의 아트 디렉팅을 진두지휘하게 된 과정과 오늘날의 고민을 털어놨다.
사무실에는 일본의 1980년대 가수 아가와 야스코의 LP '선글로우'(SUNGLOW)를 비롯해 수많은 앨범 아트워크가 쌓여 있어 거대한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 어떤 계기로 SM에 입사했나요.
▲ 디자인 전공자로서 음반 커버 작업에 관심이 있었고 레이블이 많지 않았던 시절, 당시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SM에서 일해보는 것이 여러 의미로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학창 시절에도 아이돌 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 아니오.(웃음) 어릴 때부터 제3 세계 음악을 주로 들었어요. 제 유년시절을 쥐고 흔들었던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 질베르토, 루이즈 봉파, 브루노 니콜라이, 프란시스 레이 등의 고전부터 아토 린제이, 조지오 모로더, 피치카토 파이브까지 어릴 때 좋아했던 음악을 꼽자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죠. 재즈를 비롯해 디스코, 펑크, 얼터너티브, AOR(Adult-oriented rock), 프렌치팝, 온갖 감각적 장르가 혼합된 라운지 등 국적과 장르를 불문해 확고하게 제가 좋아하는 저만의 스타일 위주로 골라 들었어요.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분야와 업종마다 그 역할이 다르지만, 저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음악적 심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일종의 시각 판타지를 구체화하는 일' 정도로 설명할 수 있죠. 앨범 아트워크, 의상, 뮤직비디오 기획과 제작을 총괄하며 관련된 사전 티저 프로모션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흔히들 생각하는 디자인이나 영상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맥락에서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구축해요.
예를 들면 에프엑스 '포 월즈'(4 Walls) 음반의 사전 프로모션을 위해 기획한 전시 이벤트나, 추리를 기반으로 팬들과 게임을 했던 엑소 '엑소더스'(EXODUS) 음반의 패스코드 프로모션, 엑소의 심볼을 브랜드 아이덴티티(BI) 개념으로 접근해 앨범마다 다양하게 변형하고 활용했던 사례, 얼마 전 샤이니의 컬러칩 프로모션 등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였어요.
입사했을 당시엔 업계 전반에 이러한 개념의 업무나 부서가 없었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 게 유의미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앞으로도 업무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유연하게 시각을 기초로 하는 재미있는 일들을 기획하려 해요.



-- SM의 기업이미지(CI)도 새롭게 디렉팅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 변화하는 미래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하는 SM의 모습을 대변하고자 했어요.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방면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매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 시스템과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죠. 그에 따라 변형과 확장이 가능한 '플렉시블 아이덴티티'를 선보였고요. 저의 출발점이자 제가 속한 조직의 CI를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진행해 온 많은 일 중에서도 특히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 업계를 막론하고 평사원이 임원까지 오르긴 쉽지 않은데요.
▲ 임원이 돼야겠다, 혹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해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특별히 예외적 경우가 아닌 이상, 조직에선 일반 사원에서 진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무엇보다 스스로 창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녹록지 않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 힘든 점은 없었나요.
▲ 당연히 너무 많았죠. 임원까지 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일을 잘 해내는 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어요. 어릴 적엔 트레이닝복을 싸 들고 와서 밤낮없이 일했죠. 당연히 괴로웠지만 다른 의미로 즐겁기도 했어요.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요. 시간은 없는데 해야 할 일은 많고 또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어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묘하게도 너무 몰두했던 어느 작업 중엔 밤을 새우면서도 정말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어요. 몸은 고단한데 마음과 머리는 계속 그 일만 생각하는 거죠. 돌이켜보면 고단했지만 목표 의식으로 버텨냈던 것 같아요.
-- K팝에서 비주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요.
▲ 비단 아이돌 업계를 넘어 시대적으로 비주얼, 즉 직관 자체가 중시되는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추세예요. 실질적으로 음악과 대등하다고 볼 수 있겠죠. 특히나 K팝에서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 문화권마다 다른 미적 기준을 충족하고자 어떤 노력을 하나요.
▲ 각기 다른 모두의 기준을 충족시키려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각 팀의 개성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 가끔 SM의 콘셉트는 '난해하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샤이니의 정규 6집 재킷도 현대미술을 차용한 것 같은 데요.
▲ 일부러 난해함을 추구한 적은 없어요. 본질과 새로움에 관심이 많죠. 샤이니의 아트워크에 사용된 삼원색과 기본도형은 사실상 난해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어린이들도 모두 아는 색과 조형에서의 기본 요소입니다. 샤이니의 경우 삼원색은 '완성색'의 개념으로 사용됐어요. 샤이니는 팀명때문에 빛으로 많이 상징되는데, 본래의 의미인 빛을 받는 사람의 뜻으로 해석되길 바라서 오히려 빛의 삼원색보다는 지속과 영속의 의미를 담아 실재하는 완성색으로 표현했습니다.




-- 다른 기획사들이 종종 앨범 재킷에 아이돌의 얼굴을 전면 배치하는 것과 차별화돼 보이는 데요.
▲ 디지털 시대에도 소장해야 하는 음반이라면 또 다른 차원의 개념으로 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이 출발선이라면 음반 커버에 사용된 초상의 유무로 차별화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약간 무의미한 논쟁이 될 수 있죠. 특히나 이미 앨범 안에 소비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초상이 수록됐다면, 커버야말로 오히려 초상 유무의 가치 판단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죠. 이는 초상이 없는 아트워크가 더 낫다는 단순 논리가 아니라, 음반 커버가 지닌 고유의 상징성을 되짚어 볼 때 초상의 유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죠.
-- 일부 서구 언론은 K팝을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다'고 비판하는데, 반박할 부분이 있을까요.
▲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로 답할 수 없는, 시대와 시장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현상에 대한 고찰이 함께 논의돼야 하는 질문이에요. 현재 자본력이 생겨 과포화된 아이돌 시장은 새로운 것을 내놓아도 비슷한 것들이 바로 양산되며, 심지어 누가 먼저 한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아이돌 시장에서만 비판받아야 할 내용은 아니에요. 돈이 되면 무엇도 불사하는 현시대의 숙제이자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화두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개인에 의해 단숨에 해결되지 않죠. 성찰을 한 개인이 화두를 만들고 각기 다른 개인들이 노력과 협력을 더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생각해요.
-- 아트디렉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 여러 맥락에서 시장이 과포화, 고도화에 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전혀 색다른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고, 안주하면 낙오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상황에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기대감을 부추길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새로움은 추구돼야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화두와 담론이 제시될 것이란 기대도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럴수록 진정성과 심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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