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 "부패하고 뻔뻔한 현실에 촉수 세웠죠"

입력 2018-08-01 16:10  

최승호 시인 "부패하고 뻔뻔한 현실에 촉수 세웠죠"
5년 만에 신작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등으로 유명한 최승호(64) 시인이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전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2013) 이후 5년 만에 내는 신작.
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방부제마저 썩을 정도로 부패한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통렬한 인식을 담았다. 총 105편의 빼곡한 시편에 비판의 서슬이 살아있다.
"냄새나는 그 물컹물컹한 덩어리를/나는 청평호에서 본 적이 있다/어떤 사람은 그 덩어리들이 불어나면서/대청호가 거대한 시궁창으로 변하는 것을/악취 속에서 지켜봤다고 한다//이 괴물체는/(누구라고 밝히지 않겠으나)/부패한 누군가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다/(중략)//도처에서 점점 불어나는 이 물컹한 괴물들과/둥둥 떠다니는 괴물들의 사체를/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부패한 그놈은 오늘도 흐물흐물 웃고 있다" ('큰빗이끼벌레는 그놈의 아바타다' 부분)
"건설업자에게/산이란 모델하우스 같은 것//대운하의 물길을 따라서/산들이 떠내려간다//화물선을 댐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은/누워서 떡 먹기/골리앗크레인은 백두산도 들어 올린다//건설업자에게 강바닥은/금광 같은 것//로봇물고기는 녹조라떼를 마시는데/죽은 물고기는 모래톱에 빨래를 넌다" ('대운하' 전문)



시인은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초기 작품인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같은 작품들과 비슷한 궤적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시로 형상화한 작업"이라고 이번 시집을 소개했다.
그가 추구하는 여러 방향의 시 세계 가운데 이런 현실 비판에 특히 주목하게 된 배경은 뭘까.
"온 나라가 너무 부패했다고 느꼈어요. 이번 시집에서 '말 못하는 것들의 이름으로'라는 시는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면서 쓴 시예요. 제가 환경운동연합에서 10년간 일하면서 사회적으로 부패한 모습을 많이 봤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도 굉장히 부패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다루는 세계라는 게 그 시점에서 간절한 것에 관한 것인데, 제가 최근 느끼는 간절함은 부패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가 더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정작 부패한 사람들이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해 자신의 부패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그는 이런 세태를 "모든 게 다 썩어도/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방부제가 썩는 나라' 전문)고 일갈한다.
"부패한 사람들을 보면 엄청나게 뻔뻔해요.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면 부패한 게 아니겠죠. 지난 겨울에 한 100일 정도 집중해서 이걸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비애를 느끼고 한편으론 분노하면서 썼어요. 그런 인식이 일종의 진단이기도 한데, 우리가 그런 인식을 더 철저하게 가져야 하는 시기 아닌가, 저 자신부터 그런 것을 감지하는 촉수를 발달시키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비판해야 더 건전한, 건강한 사회로 가지 않을까 합니다."
시인은 우리 사회 부패의 근저에 '가치의 부재'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돈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볼리비아 원주민 마을에서/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셨습니다/돈은 악마의 배설물이다"('악마의 배설물' 부분)
"돈 외에 다른 가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패한다고 생각해요. 한 개인이 자기만의 아름다운 가치를 가질 때 과연 부패할까요? 이번 시집은 이런 시대에 예술가가 뭘 해야 하는지에 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그런 성찰은 절망과 허무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거울이 따귀 때리는 아침" ('절망은 제 얼굴을 안 보려고 술에 머리를 처박는다' 전문)
시인 특유의 위트와 풍자가 녹아있는 시들은 관념적인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도 쉽게 읽고 공감할 만하다.
"삼겹살집으로 멧돼지가 돌진했다/대담한 놈이다/절망한 놈이다/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다/잃어봤자/삼겹살 정도?//삼겹살 인생에/오겹살 후회/돼지족발 같은 희망들" ('죽어봤자 고깃덩어리' 부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이 시집과 함께 그의 2003년작인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를 복간해 함께 냈다. 출판사 열림원에서 초판이 나왔다가 절판된 작품이다.
"시집이라고 하는 게 영원하지 않지요. 말의 저편으로 잊혀 가기도 하고…. 그런데 누군가가 기억을 해서 다시 복간하자고 제안했을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시집은 미당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상을 받은 시가 가장 많이 들어간 시집이어서 절판된 것이 특히 아쉬웠는데, 다시 나오게 돼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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