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 사퇴 요구한 伊 대주교 "복수에서 비롯된 행동 아냐"

입력 2018-08-30 06:00  

교황에 사퇴 요구한 伊 대주교 "복수에서 비롯된 행동 아냐"
비가노 "부패가 교회의 최상층까지 도달해 나서게 된 것" 항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81)이 미국 가톨릭 고위 성직자가 저지른 성학대 의혹을 은폐했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사퇴를 촉구해 파장을 일으킨 교황청 전직 외교관이 폭로 사흘 만에 침묵을 깼다.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77) 대주교는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기자 알도 마리아 발리의 블로그를 통해 "내 주장의 신빙성을 폄훼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슬프긴 하지만,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일 메사제로 등 이탈리아 언론은 비가노 대주교가 지난 26일 교황을 겨냥한 폭로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하며 외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고, 휴대전화도 해지하는 등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비가노 대주교는 또 발리 기자의 블로그에서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2016년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한 복수나 분노에서 이번 일을 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 세간의 추정을 부인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워싱턴 주재 교황청 대사이던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 당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미국 켄터키 주 한 마을의 법원 서기 킴 데이비스를 교황과 따로 만나게 해 나중에 교황의 분노를 샀고, 이 때문에 대사직에서 사실상 경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교황과 달리 "내가 뭐라고 이들에게 돌을 던지겠느냐"며 동성애자에게도 포용적인 입장을 보이는 교황은 당시 데이비스가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에 앞장서 반대하는 상징적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비가노의 손에 이끌려 그를 만났고, 이는 교황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해석을 낳게 했다.
보수적 성향의 비가노 대주교는 가톨릭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제에 의한 성폭력이 동성애를 묵인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며 가톨릭이 동성애에 엄격히 반대할 것을 촉구해온 인사다.
비가노 대주교는 아울러 이날 발리 기자의 블로그에서 "부정부패가 이제 교회의 최상층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가노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재위 시절인 2012년 교황청 산하 은행의 부정부패와 돈세탁 등의 의혹을 담은 문서가 유출되며 가톨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명 '바티리크스'에도 연관된 인물이다.
당시 바티칸시국 행정처장이던 그는 베네딕토 16세와 당시 교황청 2인자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편지를 보내 바티칸 은행에 관행처럼 자리잡은 부정부패와 정실 인사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이런 그를 견제한 교황청 고위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달리 워싱턴 대사로 발령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가노 대주교의 해명을 블로그에 실은 발리 기자는 공영방송 RAI 소속으로, 교황청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비가노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겨냥한 편지를 가톨릭 보수 매체를 통해 발표하기 몇 주 전 자신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고 말했다.
비가노 대주교가 해당 편지를 이탈리아어, 영어, 스페인어로 각각 작성하고, 이를 보수 매체에 전달하는 작업에는 교황의 진보적 행보에 비판적인 보수 성향의 이탈리아 기자 마르코 토사티가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비가노 대주교의 이 같은 해명은 이번 일이 가톨릭의 전통적 교리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며, 동성애자와 이혼한 사람 등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교황을 흔들기 위한 보수 진영의 공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비가노 대주교는 지난 26일 가톨릭 보수 매체들에 11쪽 분량의 편지를 보내 자신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잇따른 성학대 의혹에 관해 보고했다고 주장하며, 사제에 의한 아동 성학대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교황이 성학대 사건의 은폐에 공모자인 만큼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 가톨릭의 거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도 신뢰를 받아온 진보적 인사로 간주되는 매캐릭 전 추기경은 10대 소년을 포함해 낮은 직급의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이 거세지자 지난달 말 사직서를 냈고 교황이 이를 수리했다.
교황은 사제에 의한 아동 성학대 추문의 상처로 몸살을 앓아온 아일랜드 방문 이틀째 터진 비가노 대주교의 의혹 제기로 2013년 3월 즉위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교황은 같은 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말해 의혹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언론의 신중한 판단을 당부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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