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김민환, 두 번째 장편소설 '눈 속에 핀 꽃'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저는 1년 계획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새해 첫날 계획은 있어요.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둔 남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맑은 눈빛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여성이 눈앞에 있다면 누구든 마음이 끌릴 것 같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편지를 더는 쓰지 않게 된 지금의 눈으로 보면 더욱 낭만적인 이야기다. 이 말을 듣고 사랑에 빠진 청년은 진짜 1월 1일 0시 5분에 이 여성에게 편지를 쓴다. 1966년에 스무 살이었던 이들은 이렇게 풋풋하고 애틋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김민환 장편소설 '눈 속에 핀 꽃'(출판사 중앙북스)은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에 빠지고 세상의 불의를 참지 못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몸을 던진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1960∼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에 대학을 다니며 저항한 이들의 회고담이 다소 낯익을 법하지만,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의 고뇌와 방황, 좌절과 분투를 담은 이야기는 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생생히 되살아난다.
원로 언론학자로 2013년 첫 소설 '담징'을 발표한 김민환(73)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두 번째 소설에서 무르익은 서사를 펼쳐 보인다. 주인공 '영운'의 시점으로 그를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 첫사랑 상대인 '윤희'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짜여 이어진다.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나 결핵을 앓다 대학에 4년이나 늦게 들어온 영운은 누구보다 공부에 매진하던 중 독서모임에서 윤희를 만난다. 윤희와 금세 사랑에 빠지지만, 얄궂은 운명인지 그녀와의 만남이 자꾸만 어긋난다. 학교 밖에서는 부정 선거가 치러지고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종신 집권 시도가 이뤄지면서 독서모임 친구들을 주축으로 학생운동이 가열된다.
글솜씨가 빼어난 영운은 선언문과 격문을 도맡아 쓰고 당국으로부터 주동자로 몰리면서 정학 처분을 받는다.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다 '기자가 된 뒤 소설을 쓴다'는 꿈을 버리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엇갈리던 윤희와의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못한다.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산다'는 좌우명은 원래 영운의 것이었지만, 결국 윤희가 그 길을 걷게 된다.

읽다 보면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임을 눈치채게 된다.
지난 29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자전적 실연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그 여자를 그리워했지만, 연애를 못 했으니까 자전적 실연 소설이죠. 부잣집 딸이었는데 목사와 결혼해 어려운 길을 갔어요. 제 친구들도 용접이나 보일러 일을 배워 노동운동 쪽으로 갔고, 끝까지 노동자로 살면서 신념을 지킨 이들도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 그런 길로 가준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 주인공처럼 그 역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기자가 된 뒤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결국 대학교수가 돼 30여 년간 교편을 잡았다.
8년 전 정년 퇴임한 뒤 "기자가 될 수는 없고 소설은 한 번 써볼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전남 보길도로 내려가 머물며 첫 소설 '담징'을 썼다.
"'담징'을 5쇄까지 찍고 보니까 뭔가 더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을 얻은 게 사실이에요. 소재가 몇 가지 있었는데, 고려대 동기인 문학평론가 최동호 교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예전에 1월 1일 0시 5분에 여학생과 편지를 쓴 이야기를 했더니 재미있다며 써보라더군요."
조금씩 허구를 섞긴 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대부분 사실이라고 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결핵에 걸렸어요. 고려대에 간 것도 그때 이 학교에 의과대학이 없어서 신체검사를 안 했기 때문이었죠. 아직 낫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갔고, 건강에 유의하며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 진로를 결정할 때 친구들이 제게 노동판으로 가자고 했는데, 저는 그쪽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쪽으로 가면 상당히 격렬하게 살아야 하니까 건강에 자신이 없었어요. 돌아보면 기자가 돼 소설을 쓰려던 꿈을 못 이룬 것도 그렇고 여러 아쉬움도 있지요.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해요."
그래도 그는 뒤늦게 이룬 소설가의 꿈으로 열정을 태우고 있다.
"아무래도 두 편을 쓰고 나니 기술적으로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세 번째 소설은 치열하고 격렬한 걸 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좌우니 뭐니 정치 얘기하면서 많이 싸우는데,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뭔가, 그 이데올로기에는 왜 폭력이 수반되는가 그런 얘기요. 해방 이후 6·25까지 사례를 중심으로 해서 독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제가 젊었을 때는 가난, 그리고 질병이 선생이었어요. 그런 것들이 나를 성장시켰죠. 또 우리는 치열하게 부딪치고 살았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좀 무기력하고 너무 부모 의존적인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좀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살면서 노동이 귀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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