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운명처럼 노래…48년째 '아침이슬' 부를지 몰랐죠"

입력 2018-09-13 00:30   수정 2018-09-13 06:30

양희은 "운명처럼 노래…48년째 '아침이슬' 부를지 몰랐죠"
'뜻밖의 만남' 신곡 '늘 그대' 발표…"성시경과 협업? 그냥 좋아해서요"
10월 12년 만의 세종문화회관 공연 매진…"묻힌 노래 메들리로 선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올해로 노래를 부른 세월이 48년째이지만, 가수 양희은(66)은 걸어온 길을 기념하는 잔치를 연 적이 없다.
"징그러워요. 민망하고 오그라들잖아요."
그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하이 톤의 화통한 목소리, 직설 화법, 쨍한 눈빛 속에 숨겨진 그의 수줍음을.
"전 새 옷도 못 입어요. 사서 몇 년간 걸어두고 중력에 의해 구김이 가야입죠. 새 옷을 입는다면 원래 구김이 있거나 다리지 않아도 되는 옷. 소위 신권 느낌의 빳빳한 옷은 안 입죠. 그런 수줍음이 있거든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양희은은 어김없이 세월을 탄 듯 구김이 간 옷을 입고 있었다.
의외로 내성적이라는 그는 뜻하지 않게 시대를 노래하는 가수로 반 세기가량 보냈다. 1971년 운명처럼 만난 데뷔곡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작은 연못',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등에 음악 이상의 해석이 덧대져서다.
"인생도 흘러가는 게 중요해요.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안 풀리기도 하고, 간절히 원해도 뒤집을 수 없기도 하죠. 억지로 거스르면 안 돼요. 서른살에 난소암 수술을 받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삶과 죽음에 대해 무척 시니컬해졌을 때인데 세상이 말갛게 보이는 거예요."
"모든 게 흘러가는 대로"라고 말한 그는 언젠가부터 인생 선배가 위로하듯 삶의 내밀한 구석을 들여다보는 노래로 공감의 폭을 넓혔다. 2014년부터 선보인 싱글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을 통해서다. 양희은이 후배 뮤지션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곡을 불러 협업하는 프로젝트로, 그에겐 '부지런한 소통'의 의미가 있었다.

지난달 발표한 '뜻밖의 만남' 9번째 곡은 성시경이 작곡하고 심현보가 작사한 발라드 '늘 그대'. 감정을 쥐어짜는 노래를 싫어해 사랑 노래가 몇곡 안 되는 그에겐 오랜만에 그런 감정이 차오른 노래다. 그러나 나지막이 읊조리듯 시작해 '숨 쉬듯 그대 얼굴을 떠올려봐'라는 가사에서조차 감정을 절제하는 연륜은 숨길 수 없다.
협업 파트너로 왜 성시경을 택했는지 묻자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성시경을 좋아해요. 별 인연이 없어도 끌리는 사람이 있듯이요. 시경이와는 프로그램 출연이나 콘서트 게스트로 몇 번 인연이 있는데, 작업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좋죠'라고 하더라고요."
성시경에게 받은 데모곡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진 않았다. "노래의 봉우리가 없으니, 다시 써보라"고 하자 성시경은 금세 곡을 다시 만들어 보냈다. 사실 가사는 직접 쓰려 했지만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사가 줄줄이 써지지 않았다"며 "이 곡 가사를 고민하느라 노인성 수면 장애도 왔다. 자정이 넘어 벌떡 일어나서 새벽 4시 30분까지 꼴딱 새고서 라디오 생방송에 나가고. 수면 사이클이 돌아오기까지 고생했다"고 떠올렸다.
지금껏 '뜻밖의 만남'을 통해 협업한 뮤지션은 윤종신, 이적, 이상순, 김창기, 강승원, 악동뮤지션 등. 뮤지션마다 색깔이 깃들었지만 양희은을 떠올리며 만든 곡들인 데다, 멜로디를 장악하는 특유의 보컬이 포개지니 이질감이 없다.
"어쩌면 다들 '깨치고 나아가~' 이런 고음을 싹둑 잘라버린 힘든 저음의 곡을 주는지…. 제가 빽빽 내지르는 걸 싫어하는 친구들이구나 하고 느꼈죠. 저음으로 읊조리는 곡을 준 걸 보면 제게서 다른 이미지를 끌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강한 인상을 남긴 협업자는 지난해 '나무'를 선물해준 악동뮤지션(이찬혁, 이수현)이다.
양희은은 "(이)찬혁이가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나무에 빗댄 곡이었는데 시각이 독특했다. '정규 교육을 안 받는다는 게 놀라운 사람을 만드는구나'란 생각을 했다(이찬혁은 홈스쿨링을 했다)"고 말했다.

혼잣말처럼 "다 쓸데없다"고 웃은 그는 그 시절 경기여고와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통기타 선배 무리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고학력 여가수였다. 기자나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기에 가수를 꿈꾸지도 않았다. 출발은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하월곡동에서 양장점을 하던 홀어머니가 딸 셋을 키웠어요. 그런데 제가 18살 때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서서 빚잔치를 하고 거리로 나앉았죠. 아는 분이 단칸방을 내줬는데, 그때 빅터 전축, 아버지의 차이콥스키 음반, 아버지가 1949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사온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가야 할 정도로 작은방이었어요."
그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늘 그 자리에 갖다 놓은 듯,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음악은 운명"이다.
그는 "(송)창식이 형이 넌 너희 집 망하고 먹여 살리려고 노래했다지만 넌 안 그랬어도 가수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며 "정말 내가 '아침이슬'을 48년째 부를 줄은 몰랐다"고 돌아봤다.
물론 이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청년들의 민주화 열망 속에서 불린 '아침 이슬', '작은 연못' 등은 방송 금지곡이 됐다. 지난 2016년 겨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아침 이슬'과 '상록수'를 부른 그는 "세상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방송 금지곡들도 당시 TV가 아닌 무대에선 불렀어요. 물론 2인 1조 정보요원이 대학 축제 등에 따라다니곤 했죠. 한 사람은 인자하고 한 사람은 윽박지르고. 1972~73년 느닷없이 하고 있던 방송에 출연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고요."
바람을 견딘 들풀처럼 그의 노래는 여전히 시대를 넘어 후배들에게 뻗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아이유는 그의 대표곡 '가을아침'을 다시 불러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었다. 양희은은 "야무진 친구"라며 아이유와 나눈 문자 메시지를 읽어줬다.
그는 "아이유가 작업한 곡을 이메일로 보내줬길래 곡이 나온 배경을 설명해줬다"며 "아이유는 제 호흡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지만, 제가 나이 마흔살에 부른 노래를 잘 불렀다. 아이유가 제 손녀뻘"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10월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 부산 등지에서 전국투어 '뜻밖의 선물'을 개최한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12년 만으로 최근 출연한 JTBC '히든싱어 5' 양희은 편이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티켓은 매진됐다,
그는 이날 '뜻밖의 만남' 곡들과 '백구', '그리운 친구에게', '일곱 송이 수선화' 등 묻힌 곡들을 메들리로 선물할 계획이다. 해금 연주자 강은일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관람료 6만6천~13만2천원, ☎ 02-545-8517.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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