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 '소원' 이뤄주는 네덜란드 '재단' 활동 주목

입력 2018-09-21 07:00  

말기 환자 '소원' 이뤄주는 네덜란드 `재단' 활동 주목
"바다 보고 싶다·집에 가고 싶다"…1만1천명의 마지막 소원 이뤄줘
최고령은 111세·생후 8개월 여아도…설립자 '작은 소원이 아름답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당신이 몇달내에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 뭘 하고 싶습니까."
말기 환자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실현시켜주는 활동을 하는 네덜란드의 민간단체 "소원을 이루어주는 구급차재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재단의 도움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손자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 등 각양각색의 소원을 이룬 사람이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죽기 전에 아들과 이 박물관에 오고 싶었다. 아주 만족스럽다."
아사히(朝日)신문 1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하순, 살날이 몇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에밀(70)씨는 장남 마이크(35), 동서 로브(58)와 함께 로테르담에 있는 '미니월드'를 찾았다. 로테르담 거리를 모형으로 재현한 박물관이다. 어릴 때 부터 철도모형을 좋아했던 에밀씨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이곳을 실제로 찾게된 사연은 이렇다. 3개월 전 등에 갑자기 격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입원해 침대에 누운 채 자리보전 생활을 하다 6월 초 상태가 호전돼 퇴원하자 아내가 구급차재단에 연락했다.
재단 자원봉사자인 경찰관 에드(61)씨가 운전사 역할을 맡고 간호사인 사네씨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의 박물관 나들이에 동행했다. 의료설비를 갖춘 왜건차로 암스테르담 교외에 있는 에밀의 자택에서 1시간 걸려 박물관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간호사 사네씨가 그에게 약을 먹이고 상태를 확인했다.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에밀은 이동식 침대에 누워 2시간 남짓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아들 마이크와 가끔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마이크에 따르면 아버지는 자신이 생겼는지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한다.
이 활동을 시작한 건 20년간 구급차 운전사로 일한 케이스 펠드블(58)씨다. 2006년 여름 한 남성 말기암 환자와 만난 게 계기였다.
입원중인 남성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던 길이었다. 항해사 출신인 환자는 바다에 한번 더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 환자는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 부질없는 희망"이라면서 "게다가 나는 크리스마스 전에 죽는다더라"고 말했다. 펠드블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배에 태워주는 관광회사와 협의한 후 근무를 쉬는 날 구급차를 빌려달라고 상사에게 부탁했다. 사흘 후 동료와 함께 이 환자의 소원을 이뤄줬다.
펠드블은 "작은 노력으로 많은 말기환자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환자는 바다 나들이 후 "힘을 얻어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감사인사을 남기고 다음해 봄 유명을 달리했다. 의사가 예고한 그해 크리스마스를 넘겨 다음해 봄까지 생존한 것.
펠드블은 2007년 직장 동료, 아내 등과 함께 말기환자의 희망을 무료로 이뤄주는 재단을 설립했다. 자비로 '구급차'를 살 때 까지 상사가 시(市) 구급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줘 비번으로 쉬는 날에만 활동을 시작했다. 환자들의 의뢰가 많아지자 2009년에 퇴직,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활동을 계속해 사람들을 도와주기 바란다"는 상사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이 활동에는 의료전문지식을 가진 자원봉사자가 있어야 한다. 재단에는 의사와 간호사, 구급대원 270여명이 등록해 있다. 집중치료실 환자에게도 대처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하루 5-6건, 연간 2천건정도의 부탁이 들어온다. 그동안 소원을 이뤄준 의뢰건수는 1만1천건이 넘는다. 최고령자는 111세. 최연소는 생후 줄곧 호스피스병동에 있던 8개월된 여자 아기로 부모가 집에 한번 데리고 가기를 소원했다. 소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망한 건수는 7건, 이중 6건은 의뢰자가 소원하던 장소에서 였다.
소원의 대부분은 바다에 가보는 것과 자택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손자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유원지에 가고 싶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콘서트에 가고 싶어한 고등학생도 있고 자동차로 네덜란드를 출발, 로마 가톨릭 교회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러 가 손을 잡아본 환자도 있었다. 펠드블은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소원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간 2천건에 달하는 `소원성취' 활동에 필요한 45만 유로(약 5억9천만 원) 정도의 비용은 기업과 환자 가족 등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 단체의 지명도가 높아지자 유원지와 미술관이 무료 입장을 제의하고 영업시간 외 입장허용을 제안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펠드불씨 자신의 소원은 바다 옆에 환자들이 묵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아사히가 전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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