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 이슬람 최대 추모일 아슈라…검은 물결 뒤덮인 이란

입력 2018-09-20 21:08  

시아 이슬람 최대 추모일 아슈라…검은 물결 뒤덮인 이란
시아파 3대 이맘 후세인 비극적 죽음 되새겨
이슬람 시아, 수니파 결별의 결정적 장면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슬람권은 크게 주류 수니파와 소수인 시아파로 나뉜다.
이런 구분은 정치로도 이어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그룹과 이란을 맹주로 하는 시아파가 여러 중동 현안을 놓고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이들 종파가 역사적으로 간극이 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은 타 종교보다 오히려 시아파를 더 배척해 이단자, 배교자로 보고 잔혹하게 공격했을 정도다.
두 종파는 이슬람이 탄생한 초기 7세기에 갈라졌다.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칼리프)를 지목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 결과적으로 두 종파로 나뉘게 된 원인이 됐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까지는 예언자의 혈통으로 후계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합의로 칼리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아파는 반드시 예언자와 알리의 직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아파라는 명칭 자체가 '알리의 추종자'라는 뜻이다.
양측의 갈등은 서기 680년 10월 지금의 이라크 중남부 카르발라에서 마치 영화처럼 폭발한다.
수니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해 그 왕을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로 책봉했다. 반면 소수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이자 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따랐다.
우마이야 왕조의 야지드 1세는 아버지 무아위야에게서 680년 칼리프를 이어받은 뒤 후세인의 시아파 세력에 충성을 요구했다.
거대한 수니파 왕조와 대결을 앞두고 당시 시아파 내부에서는 주전론과 주화론이 충돌했다.
결국 후세인은 결사항전을 택하기로 하고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와 맞붙었으나 그의 곁엔 72명의 병사와 가족밖에 없었다.
현격한 군사력 차이로 단 2시간 만에 후세인은 수니파 군대에 처참하게 패한다.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한 후세인의 목은 베어져 수니파 칼리프 야지드 1세에게 보내졌다.
야지드 1세는 그가 죽어서도 쿠란(이슬람 경전)을 암송하지 못하도록 잘린 머리를 심하게 매질했다고 한다.
카르발라 전투는 전투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이고 순식간이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돌이킬 수 없는 원한 관계가 된 결정적 장면이 됐다.
이는 1천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아파 무슬림에게 이맘 후세인의 비극적 전사는 기독교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교와 견줄 수 있을 만큼 시아파의 종교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맘 후세인의 전사일은 이슬람 역법(히즈라력)으로는 첫 번째 달(무하람)의 열번째 날이다.
이를 '아슈라'라고 부른다. 올해는 이달 20일에 아슈라를 맞았다.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슈라에 금식기도했다는 이유로 하루 동안 금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시아파는 전혀 다르다.
순교한 이맘 후세인은 시아파가 섬기는 12명의 이맘 가운데 가장 숭모하는 대상이다. 그가 전사한 이라크 카르발라는 지금 시아파 최고의 성지다.
1천400년전 이맘 후세인의 용기와 비극적 순교를 매년 기억하는 아슈라는 시아파를 결속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다. 시아파는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거짓과 압제, 불의에 굴하지 않고 목숨으로 이슬람의 진실을 수호한 성스러운 행위로 여긴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서는 무하람이 시작되면 아슈라까지 열흘간 일반 시민도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전국 곳곳에 '후세인이여'라고 적힌 검은 휘장과 그를 상징하는 녹색 전등이 점등된다.
이 기간엔 어린이도 후세인을 공격한 우마이야 왕조를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지 않는 게 좋다.
시내 여러 곳엔 검은색의 아슈라 텐트(차도르)가 설치돼 무료로 식사와 차를 대접하는 자선이 베풀어진다.

아슈라 닷새 전부터 매일 저녁 추모 행진이 벌어지고 당일엔 오전부터 온종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넘쳐난다.
'노헤'라는 장송곡과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추모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양손에 든 쇠사슬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리며 이맘 후세인의 고통을 되새긴다.
이 채찍질은 이맘 후세인을 지키지 못한 자책의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엔 칼로 자신의 이마를 반복적으로 두들겨 피를 내는 것이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로 여겨졌으나 사상자가 나자 정부가 나서서 이를 금했다.
행진 중에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때리면서 이맘 후세인이 수니파 군대에 당한 모욕을 애통해 하고, 감정이 고조돼 눈물을 흘리는 무슬림도 쉽게 볼 수 있다.
성탄절과 같이 기쁜 날을 기념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시아 이슬람은 7세기 카르발라 전투 이후 역사적으로 핍박받는 소수 종파인 탓에 한스럽고 슬픈 날을 추모하는 차이가 가장 크게 대조되는 날이 아슈라라고 할 수 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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