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빠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배준 소설 '시트콤'

입력 2018-09-22 09:03  

젊고 빠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배준 소설 '시트콤'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젊은 경쾌한 감각을 능청스럽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이 나타났다.
최근 출간된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 '시트콤'을 읽고 나면 이 소설을 쓴 작가 배준(28)이 궁금해진다.
근사한 장편소설이 드물게 나오는 한국 문단에서 20대 젊은 작가가 선보인 이 경장편소설은 '이야기의 힘' 그 하나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금세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는 더운 여름날 어느 고등학교 상담실에서 시작한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점심시간을 틈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이곳에 들어온다. 남학생은 방치되는 바람에 아무도 모르는 이곳을 자신이 우연히 발견했다며 여학생을 안심시킨다. 그런데 두 사람의 접촉이 막 이뤄질 찰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교무실 에어컨이 고장 나 시원한 곳을 찾아온 교사들이었다. 칸막이 뒤에 있던 두 학생은 급히 탁자 밑으로 숨는다. 잠시 뒤 선생님들이 나가고 두 학생이 나가려는데, 다시 젊은 교사 두 명이 돌아온다. 두 사람 역시 은밀한 이곳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려 한다. 그런데 다시 또 누군가가 들어와 두 교사 역시 탁자 밑으로 숨는다.
그런데 이 소설 중심인물과 줄거리는 따로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연아'와 엄마의 일생일대 싸움이 큰 줄거리다. 지금까지 엄마 말에 순종하며 공부만 한 연아는 전교 1등인 모범생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번 여름방학에 연아를 강원도 오지에 있는 기숙학원에 보내겠다고 한다. 연아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만 하는데, '서울대'를 입에 달고 살며 모의고사 전국 1등을 하라고 강요하는 엄마의 독단에 성질이 폭발한다. 라면을 먹던 중 시작된 말싸움이 극에 달해 급기야 엄마가 김치 포기를 집어 던지고, 연아는 그걸 맞고 집을 나가버린다. 급히 나오느라 전화기도 없고 주머니에 든 돈 몇 푼이 전부. 모자라는 돈으로 겨우 찜질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이때부터 예기치 않은 소동이 벌어진다.
소설은 6개 챕터인데, 각각의 다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처음 장소인 학교 상담실로 돌아와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사건이 터진다.
중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서사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기보다 재미를 더하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층을 쌓아 올리는 역할을 한다. 어쨌든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이어서 독자는 이 이야기가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하며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의 재미 속에 지닌 풍자적 요소도 적지 않다.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자식의 삶을 짓밟으려는 엄마들의 극성맞은 학벌주의, 원조교제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중년 남자, 힘으로 학생들을 누르려는 권위적인 교사,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무지한 남학생 등이 그려진다.
우연히 만난 옛 동창 여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남자 고교생을 친구인 남학생이 나무라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원래 그냥 내뱉는 말에 진심이 담기는 거야. 난 네가 여자랑 해보고 싶어서 환장한 애라는 걸 너무 잘 알아. 길에서 맨날 여자들 얼굴이나 품평하고, 입만 열면 할 줄 아는 말이 여자 외모 얘기, 섹스 얘기…. 지긋지긋하지도 않냐? (후략)" (81쪽)
"너 X나 위선적인 거 알아? 네가 뭔데? 너도 결국 남자잖아. 네가 뭘 안다고 남자애들한테 잔소리냐고, 재수 없게." (83쪽)
"나처럼 지랄하는 애들이 있으니까, 너처럼 눈치라도 보는 남자들이 생기는 거야." (91쪽)
작가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어렵고 따분한 건 질색이다, 읽는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만 말자….' 이런 주문을 강박적으로 되뇌며 '시트콤'을 썼습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셨다면, 읽는 동안 시간이 아깝지 않으셨다면 창작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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