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병원도 다니고, 투표도 할 수 있어요"

입력 2018-09-26 11:03  

"이제 병원도 다니고, 투표도 할 수 있어요"
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69년 만에 주민증 받은 할머니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69년 동안 호적 없이 살아온 할머니가 대한법률구조공단(이하 공단)의 도움으로 성(姓)과 본(本)을 얻었다.



26일 공단에 따르면 5살 되던 해 출생신고도 안된 상태에서 생모에게 버림받았던 길모(69·여)씨는 최근 극심한 허리 통증을 경험하면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치료받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길씨는 어린 시절 식모살이를 하면서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길씨는 식모살이 시절 의지하던 사람의 죽음과 배신 등으로 한때 유흥업소에까지 발을 들여놓았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전남도청에 즐비한 시체를 붙들고 오열하는 유족을 본 이후 유흥업소에 발길을 끊었다. 사는 곳도 목포와 해남을 거쳐 제주로 옮기게 됐다.
길씨는 해남에서 인연을 맺은 사실혼 배우자와 제주로 이주했지만, 배우자의 가정폭력으로 결국 이별하고 현재는 홀로 식당 일과 폐지 줍는 일 등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길씨는 그동안 공공기관을 방문해 굴곡진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 주민등록 신청을 피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심해진 허리 통증으로 병원 치료가 절실해지면서 결국 주민등록을 발급받기로 결심, 도움을 받기 위해 공단을 찾았다.
또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일도 길씨가 주민등록 발급을 결심한 이유가 됐다.
공단이 지문을 조회한 결과 길씨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적자(無籍者)였다. 실제 길씨는 본인의 이름과 나이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공단은 성본 창설과 길씨가 가족등록 미등록자임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성본 창설은 출생신고가 안 돼 있고, 부모가 누군지도 몰라 가족관계등록부(호적)가 없는 이들이 신분을 얻기 위해 스스로 성씨를 만드는 것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성·본과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신청을 한 무적자는 2013년 105명, 2014년 78명, 2015년 72명, 2016년 49명, 2017년 69명, 2018년 상반기 20명 등 5년 6개월간 총 393명이다.
또 담당 변호사가 법원 심문기일에 함께 출석해 길씨가 판사의 질문에 편안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노력 끝에 길씨는 7월 6일 가족관계등록 창설 허가를 받았고, 8월 1일엔 주민등록증도 발급받았다.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한 상태다.
공단 제주지부 이봉헌 변호사는 "길씨가 69년 동안 주민등록 없이 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며 "길씨가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탬이 돼 기쁘다"고 말했다.
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률지식이 부족해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dragon.m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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