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얼굴들 "사고없는 훈훈한 마무리, 좋지 아니한가"

입력 2018-11-01 18:48  

장기하와얼굴들 "사고없는 훈훈한 마무리, 좋지 아니한가"
"10년간 우리말 우리답게 썼다는 자부심 있죠"
정규 5집 '모노'로 10년 활동 종료…12월 연세대서 마지막 공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음악적 기준에서 최고에 올랐을 때 해산하는 게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장기하)
데뷔 10년 만에 해체하는 밴드 장기하와얼굴들은 커리어 정점에서 헤어짐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위워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마지막 앨범인 정규 5집을 공개한 멤버들은 "꿈같은 10년이었다"고 심정을 밝혔다.
전일준(드럼), 하세가와 요헤이(기타), 이민기(기타), 장기하(보컬), 정중엽(베이스), 이종민(키보드)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러나 소회는 조금씩 달랐다.



"마무리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한 건 아니에요. 8월 말쯤이니까 두 달 됐네요. 10년간 군더더기 없는 소리를 담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 기준에서 이번 음반이 최고예요. 너무 잘 만들어져서 6집이 더 좋을 순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멤버들에게 그만하자 제안했고, 한참 논의한 끝에 뜻을 모았습니다."(장기하)
"일단 오늘 새 앨범이 나왔고, 연말 공연도 있어서 다른 생각은 딱히 들지 않습니다."(이종민)
"한국에서 10년간 밴드하고 잘 끝낸다는 게 굉장히 희박한 확률이잖아요. 보통 사건·사고로 마무리되는데, 전혀 그런 것 없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지만 재미있던 기억을 갖고 또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을까요."(정중엽)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고요. 지금이 밴드를 마무리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는 생각은 들어요. 사실 밴드를 마무리하는 소회는 12월 31일 자정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곡을 연주한 분은 많았지만, 100% 재현한 팀은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자부심이 있습니다."(이민기)
"저희 여섯 명은 10년간 가족으로 지내왔거든요. 가족이 함께 살다 독립해서 한 동네 사는 거예요. 만나서 한 잔할 수 있는 환경이고요. 그래서 제게 헤어짐, 해체라기보단 독립입니다. 제가 할아버지가 됐을 때 '젊어서 뭐 하셨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장기하와얼굴들 했었어'라고 답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하세가와 요헤이)



"해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전 살짝 마음에 우울함이 찾아왔었어요. 저는 원년 멤버는 아니고 중간에 합류했지만, 장기하와얼굴들의 굉장한 팬이었거든요. 저의 20대 마지막을 함께한 친구들과 형들이라 남다릅니다."(전일준)
2008년 싱글 '싸구려 커피'로 데뷔한 이들은 복고와 독창성을 더한 음악으로 내공을 인정받았다. 대표곡 '싸구려 커피'를 비롯해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렇고 그런 사이', 'ㅋ' 모두 실험적인 우리말 사용으로 사랑받았다.
장기하는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게,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는 걸 부끄러워할 때가 있다. 더 잘 나가는 나라, 언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그래서 대중음악사가 우리말 고유의 특성을 자꾸 숨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장기하와얼굴들은 그런 경향이 있든 말든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썼다는 데서 뭔가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이렇게 음악적 자부심이 최고에 달했을 때 헤어지니까 훈훈할 수 있는 것 같다. 밴드가 점점 내리막길로 가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서로에게 불만이 쌓인 상태였다면 웃으면서 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앨범 '모노'(mono)는 장기하와얼굴들답게 독특한 가사와 복고를 향한 향수가 돋보이는 앨범. '그건 니 생각이고♬', '나와의 채팅', '등산은 왜 할까', '별거 아니라고' 등 9곡 모두 제목이 범상찮다.
밴드는 앨범을 제목처럼 '모노'로 녹음했다. 다수의 마이크로 여러 방향에서 나는 소리를 입체적으로 녹음하는 스테레오 방식과 달리, 마이크 하나로 녹음하는 기법이다.
"1960년대 이후 대중음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에요. 어찌 보면 열등한 기술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비틀스 1집 오리지널 모노 LP(바이닐)를 구해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습니다. 소리가 좌우로 펼쳐지지 않고 가운데에 다 몰려 있는데도 모든 악기가 명료하게 들렸고, 묘하게 더 집중되는 사운드였어요. 편곡이 완벽하니 장점으로 작용한거죠. 그때부터 모노 믹스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그건 니 생각이고♬'는 남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에게 '씩씩하게 살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서태지와아이들의 노래 '환상 속의 그대'를 샘플링했다.
뮤직비디오에도 힘을 바짝 줬다. 타이틀곡을 비롯해 '거절할 거야', '초심', '별거 아니라고'까지 무려 네 편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특히 '거절할 거야'는 방송인 유병재가, '초심'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만든 윤종빈 감독이 연출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멤버들은 즉답을 내놓지 않았다. 눈가엔 망설임이 스쳤다.
장기하는 "일단 이 멤버, 이 편성으로 할 수 있는 건 5집까지라는 데만 생각이 미쳐있다. 앞으로 계획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년 1월 1일부터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완전히 무(無)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기하와얼굴들은 이날 엠넷 '엠카운트다운' 출연을 시작으로 음악방송에 연달아 얼굴을 비친다. 오는 12월 29∼31일 사흘간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장기하와얼굴들 마지막 공연-마무리: 별일 없이 산다'를 개최한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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