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의 비극…김탁환 소설 '살아야겠다'

입력 2018-11-06 06:03   수정 2018-11-06 08:00

메르스 사태의 비극…김탁환 소설 '살아야겠다'
"사람 목숨 천시하는 시스템이 문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2015년 사망자 38명, 확진 환자 186명 기록을 남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당시 몇 달간 한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이내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잊혔고, 이제는 아득한 옛일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다 지난 9월 초 국내에서 메르스 환자가 다시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잠시 긴장감이 일기도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신속한 대처로 메르스가 퍼지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 3년여 전에도 이번처럼 단 한 명의 환자에서 시작됐는데,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큰 사태가 된 이유가 뭘까.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소설가 김탁환이 2015년 메르스 사태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이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훑어내 640쪽 분량 방대한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소설 제목에서부터 누군가의 절박한 심정이 전해진다. '살아야겠다'(북스피어 펴냄).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 수색·수습 작업에 참여한 민간잠수사 김관홍 씨 이야기를 다룬 '거짓말이다'에 이어 작가가 두 번째로 펴내는 '사회파 소설'이다.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사회파 소설, 당대 문제를 다룬 소설을 예전부터 쓰고 싶었는데, 실력이 더 쌓이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언제가 될까 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쓰게 됐고, 메르스가 바로 그다음 해에 터져서 자연스럽게 계속 쓰게 됐다. 되게 중요한 사건인데 뭐랄까, 그냥 지나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이어 "사람이 많이 죽고 병에 걸렸다. 제대로 들어가 보니 세월호 참사의 연장선에서 얘기할 수 있겠더라. 사람 목숨, 생명을 천시하는 시스템 이런 것들 속에서 세월호도 터지고 메르스도 일어나고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크게 보자면 이게 사람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지, 아니면 돈이나 권위, 권력, 기존에 이뤄져 온 관습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지, 두 가지가 대립하게 된 것 같다. 이번에 메르스 환자가 나왔을 때는 병원 이름을 다 공개했는데, 2015년에는 병원 이름을 숨겼지 않나. 이후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걸 시민 혹은 국민 목숨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할 건지, 아님 돈이랄까, 제도를 중심에 놓을지…그것의 차이였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소설 속에 자세히 그려진 2015년 5월 당시 관련 병원들과 정부의 초동 대응을 보면 탄식이 나온다.
그해 5월 18일 서울 F병원은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있다고 보건소에 신고했고 보건소는 즉시 질병관리본부에 진단 검사를 의뢰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환자가 체류한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단 검사를 거절한다. 담당 의사가 다시 검사를 요청했고, 다음날 검사가 이뤄져 최초 신고로부터 44시간 만에야 메르스 양성 판정이 나온다. 이어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관들은 1번 환자가 이전에 입원한 경기도 W병원으로 출동해 역학 조사를 벌이지만, 병원 측 손실을 고려해 병원 전체를 격리하도록 조치하지 않는다. 또 밀접접촉자 범위를 '환자의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머문 자'로 좁게 규정해 담당 의료진과 간병인, 같은 병실 환자만을 격리한다. 그러다 결국 며칠 만에 이 병원의 다른 병실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이후 확진 환자가 급격히 늘어만 간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정한 밀접접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는 없었다. 그물은 헐거웠고 바다는 아득했다. 시간을 끌수록 바다는 더 넓어져만 갔다." (20쪽)
그 사이 1번 환자가 입원했던 경기도 W병원에 같은 기간 있었던 환자가 고열과 기침으로 C병원에 입원했다가 증상이 심해지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F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 응급실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는 크게 확산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 F병원을 비롯해 확진 환자들이 다녀간 병원 이름을 계속 공개하지 않는다.
소설의 서사는 당시 각자의 이유로 F병원 응급실을 오간 치과의사 '김석주'와 그의 아내인 간호사 출신 제약회사 직원 '남영아', 출판물 유통업체 직원인 중년 여성 '길동화', 민국방송 수습기자 '이첫꽃송이' 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들이다.
작가는 "피해자들이 처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인물들을 그렸다. 연대기적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다 썼고, 병원 안에서 죽은 사람들과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 이야기도 다 썼고, 전염병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진 공포와 혐오에 대해서도 썼다"고 설명했다.
영문도 모른 채 메르스에 걸린 이들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겹게 투병한다. 사망자가 속출하고, 간신히 메르스를 이겨 내고 살아남은 이들도 후유증을 앓으며 사회적인 기피 대상이 된다. 이들은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돼 감염된 희생자,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타인을 감염시킨 '가해자'로 비난받는다.
작가는 책 말미 '작가의 말'에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고 썼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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