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랩이고 랩은 시다"…듣는 시집 '일인시위'

입력 2018-11-11 08:03  

"시는 랩이고 랩은 시다"…듣는 시집 '일인시위'
시인 김경주·제이크 레빈, 힙합계 MC메타·김봉현 협업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누군가는 랩(rap)을 리듬 앤 포에트리(Rhythm And Poetry)라고 부른다. 리듬과 시. 즉, 랩은 리듬이 있는 시란 뜻일 게다. MC메타란 이름으로 처음 랩을 할 때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리듬으로 만든 시가 랩이란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 시인의 입장에서 랩을 시로 본다면 래퍼의 입장에서 시는 랩의 본질이란 생각이 든다."
힙합 그룹 '가리온'으로 유명한 힙합계 대부 MC메타는 이렇게 랩이 본질적으로 시(詩)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너무나 달라 보이는 시와 랩.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너무나 닮아 있는 시와 랩. 둘의 차이와 공통분모를 통해 인간의 고백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시와 랩은 한 자연에서 나온 다른 광물이다."
김경주 시인 역시 "시는 애초부터 특정한 장르가 아니었다. 인류의 모국어이며 인간 안에 숨어 있는 리듬이기 때문"이라며 시와 랩의 연결고리가 매우 강력하다고 말한다.
힙합 평론가·저널리스트인 김봉현은 랩이 시로부터 나왔고 랩이 지닌 '라임(rhyme)' 역시 영미권 시문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랩은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 동시에 고전적인 시이며, 과거의 훌륭한 시는 곧 현재의 훌륭한 랩이 된다"고 정의한다.
시와 랩이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생각과 시를 랩으로 읊어 대중적으로 전달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흐름이라고 한다.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는 문화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김봉현은 "포에트리 슬램이란 쉽게 말해 시 낭독과 랩 공연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퍼포먼스 형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이 포에트리 슬램 운동의 하나로 김경주와 MC메타, 김봉현이 '포에틱 저스티스'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시를 랩으로 만들어 선보이는 활동을 해왔고, '문장 웹진'에 '일인시위'라는 제목으로 영상과 함께 원고를 연재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가 겪은 여러 사건과 그에 관한 언론 기사들을 재해석해 포에트리 슬램 형식으로 창작한 내용이다. 미국인으로, 시인이자 번역가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제이크 레빈이 '일인시위'에 함께했다. 이들의 작업이 이번에 책으로 출간됐다. '일인詩위- 한 사람이 시로 할 수 있는 행위'(아토포스 펴냄).


김경주와 제이크 레빈, 두 시인은 2010년 한 철강업체 용광로에 빠져 숨진 20대 계약직 노동자를 애도하는 시를 비롯해 미세먼지, 소수자, 취업난, 디지털증후군, 계란파동, 롱패딩 열풍, 비선실세, 젠트리피케이션 등 11가지 주제로 '포에트리 슬램'을 위한 시를 썼다.
제이크 레빈은 '앞이나 뒤나- 거지같은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녹아 죽어버린 청년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내 삶의 헐떡임/잊기 위해 나는 연소한다./공기 없이도./나를 연소시킨 사람들을 잊기 위해/나는 연소한다."라고 시를 썼다.
김경주는 '날아라 거위'라는 제목의 시로 롱패딩 열풍을 이렇게 풍자한다.
"어느 날 발목까지 평창 롱패딩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서서 엄마에게/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지며 붕어빵을 달라고 하는 걸 보았어./아줌마 붕어 두 마리 주세요./엄마는 붕어 아가미를 집게로 건져 올리며 말했어./학상 그 잠바 거위털 맞아? 그거 얼매야?/이거 live plucking 라이브 플러킹 한 거예요./살아 있을 때 잡아 뜯어야 털이 살아 있대요./여기에 거위 열다섯 마리에서 스무 마리는 들어가야 한대요./엄마는 등골에 브레이크가 걸렸어./롱패딩 때문에 엄마는 등골브레이크가 걸렸어./등뼈 속에 추운 얼음이 가득 들어갔어./엄마는 얼음 왕국의 거위 여왕처럼 물갈퀴가 다 얼어붙었어." ('날아라 거위' 부분)
이번 시집과 함께 MC메타가 녹음한 '포에틱 저스티스 믹스테이프'도 한정 발매한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 다섯 곡이 담겼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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