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아도 전세금 못돌려줘"…지방 깡통주택·깡통전세 속출

입력 2018-11-12 06:03   수정 2018-11-12 09:38

"집 팔아도 전세금 못돌려줘"…지방 깡통주택·깡통전세 속출
경상·충청 등 현재 매매가 2년 전 전셋값보다 낮아…'역전세난' 갈등 심화
"전세금으로 집값 갚고도 남아" 투기악용 조짐도…세입자 등 피해 우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경남 김해 장유동의 B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는 김모(50)씨는 전세 만기가 지나도록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3년 전인 2015년 1억5천만원에 전세를 들었는데 "현재 집값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서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집주인이 버티고 있어서다.
이 아파트의 현재 매매가격은 1억2천500만원 선으로 2년 전 김씨가 계약한 전세금보다 2천500만원이 낮다. 집주인이 당장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셈이다.
김씨는 "울며겨자먹기로 현재 전세가인 1억1천만원에 전세 재계약을 하려고 해도 집주인이 4천만원을 내줘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못 준다고 한다"며 "집주인은 소송을 하던지 알아서 하라며 막무가내"라며 답답해했다.
지방 일부 지역의 집값 하락이 가속화하면서 '깡통주택',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매매가격이 2년 전 세입자와 계약한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내주지 못하는 것이다. 2년 전보다 전셋값이 떨어져 집주인이 재계약을 하며 돈을 내줘야 하는 곳들은 부지기수다.
이러한 역전세난으로 인해 집주인-세입자간 갈등과 분쟁도 심화되고 있다.



◇ '전셋값>매맷값' 가격 역전…임대차 분쟁 확산
12일 부동산업계와 국토교통부, 한국감정원 등에 따르면 최근 경남, 경북, 충남, 충북 등 지방을 중심으로 '깡통주택'과 '깡통전세'가 늘고 있다.
대부분 장기간 매매·전셋값이 동반 하락했거나 2년 전 대비 매매가격이 전셋값보다 더 많이 떨어진 지역들이다.
깡통주택은 매매가격 하락으로 전세와 대출금이 매매 시세보다 높은 주택을, 깡통전세는 이로 인해 전세 재계약을 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전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주택을 의미한다.
창원시는 현재 매매가격이 2년 전 전셋값 밑으로 떨어지면서 재계약 분쟁이 늘고 있다.
성산구 대방동 S아파트 전용면적 84.9㎡는 2년 전 전세가 2억∼2억2천만원에 계약됐는데 현재 매매가격이 이보다 평균 4천만원 낮은 1억6천만∼1억8천만원으로 하락했다.
2년 전 매매가격이 2억3천만∼2억6천만원 선이었는데 그간 8천만∼1억원 이상 떨어지면서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주택형의 전셋값도 현재 1억4천만∼1억5천만원으로 2년 전보다 내려 집주인이 집을 팔지 않고 전세를 재계약하려면 6천만∼7천만원을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전용 48㎡도 2년 전 전세계약이 7천500만∼9천만원에 계약됐는데 현재 매매가는 6천∼7천만원에 그친다. 현재 전셋값도 매매가와 비슷한 6천만∼7천만원 선이어서, 2년 전 맺은 전세를 재계약하려면 집주인이 1천500만∼2천만원 이상 내줘야 한다.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 통계에 따르면 창원시 성산구는 최근 2년 새 아파트값이 21.87% 하락했다. 이 기간 전셋값이 13.28% 내린 것에 비해 매매가 낙폭이 훨씬 크다.
감정원 조사 결과 최근 이 지역에서 거래된 전세 물건의 65%가 '깡통전세'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작년부터 이 일대 새 아파트 입주가 크게 늘면서 매매·전셋값이 동반 하락했는데 특히 매매가격이 더 많이 떨어졌다"며 "2년 새 집값이 20% 넘게 떨어지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새 아파트보다 낡은 아파트일수록 역전세난이 더욱 심하다"며 "집주인은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못 내주는 실정이고, 세입자는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내린 경남 거제시는 지난 2년간 아파트값이 28.32% 떨어지는 동안 전셋값은 33.31%나 급락해 '깡통전세' 위험군은 창원보다 적지만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거제시 고현동 D아파트 전용 59.76㎡는 2년 전 전셋값이 1억3천만∼1억4천만원인데 현재 매매가는 8천만∼1억원에 불과하다.
현재 전셋값도 6천만∼7천만원으로 2년 전 대비 반토막이 난 상태여서 전세 만기가 도래한 집주인은 집을 팔지 않으면 7천만원, 집을 팔아도 4천만원 이상의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거제시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그나마 자금 여유가 있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내주고 있지만, 돈이 없는 경우는 집을 팔아도 2년 전 전세금을 충당할 수 없어 문제"라며 "최근 집이 잘 안팔리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법적 분쟁도 늘어나는 등 고통이 크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도 최근 2년새 아파트 전셋값이 7.71% 떨어지는 동안 매매가격은 9.75% 하락하며 깡통전세가 늘어나고 있다.
김해 무계동 S아파트 전용 47.3㎡는 2년 전 전셋값이 1억∼1억2천만원 선이었는데 현재 매매 시세는 8천300만∼1억500만원 선이다.
2년 전 매매가격이 1억2천만∼1억3천만원이었으나 현재 2천만∼3천만원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당장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는 처지다.
경북과 충청권 곳곳에서도 역전세난 문제가 심각하다.
구미 옥계동 K아파트 전용 59.85㎡는 2년 전 전셋값이 6천100만∼7천100만원 선이었는데 최근 실거래 매매가는 4천만∼5천만원 선에 그친다.
청주 상당구 용암동 F아파트 전용 51.9㎡는 2년 전 전셋값이 1억3천500만∼1억4천만원인데, 현재 매매가격은 1억2천800만∼1억3천만원으로 2년 전 전셋값보다 싸다.
일부 지방의 경우는 현재 매매가격이 전셋값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곳도 나오면서 이를 이용한 투기수요까지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집을 사서 전세를 놓으면 전세보증금으로 매매가격을 갚고도 남아 자기 돈이 거의 없거나 소액인 사람도 집을 살 수 있다.
창원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매가가 1억1천만원인데 전세 시세는 1억원에서 최대 1억3천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어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매매가격을 갚고도 최대 2천만원이 남는다"며 "이런 점을 노리고 싼 매물이 나오면 집을 사겠다는 문의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수자가 이런 상황을 악용할 경우, 전세금을 떼이거나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세입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입주물량 증가, 지역 경제 위기 겹쳐 '설상가상'…임차인 피해 최소화해야
이처럼 지방의 깡통주택, 깡통전세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입주물량 증가에 있다.
2010년 이후 지속된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로 2014∼2016년에 걸쳐 지방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 분양이 크게 증가하면서, 지난해부터 이들 지역의 입주물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부동산114 조사 결과 경상남도의 경우 2010년대 초반 연평균 6천∼2만가구에 불과하던 새 아파트 입주물량이 지난해 4만여가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입주물량도 3만7천여가구에 달하고 내년 역시 3만5천여가구의 입주가 대기중이어서 '물량 폭탄'의 후폭풍이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2015년까지 입주물량이 연평균 5천∼1만2천가구에 그쳤던 충청남도도 2016년에는 2배가 넘는 2만2천500가구로 준공이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2만4천500가구, 올해 2만6천가구로 연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충북 역시 2010년 초반 연평균 5천가구 미만이던 입주물량이 올해 2만2천여가구로 급증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매매, 전셋값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강원도는 지난해까지 입주물량이 5천500여가구에 그쳤지만 올해는 입주물량이 3배가 넘는 1만8천가구에 육박하고, 내년에도 1만7천여가구가 준공돼 역전세난이 우려되고 있다.
지방은 입주물량 증가와 함께 조선·자동차 등 지역 기반 산업의 위기로 경기침체까지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집값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거제시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산업 침체로 월급 근로자는 물론 자영업자들도 소득에 급격하게 줄었는데 부동산 시장이라고 버텨낼 수 있겠느냐"며 "한 달 내내 거래 한 번 못해본 중개업소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지방의 집값 하락과 역전세 문제는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9·13대책에서 지방 미분양 관리를 강화해 미분양이 많은 지역의 주택공급 물량을 조정하고 깡통전세, 역전세 위험지역의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대한 위축지역 특례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조치의 전부다.
미분양 관리지역에서 시행하는 전세금 반환보증 특례보증은 전세계약 종료 6개월 전까지 가입을 허용하고, 보증기관의 보증금 대위 변제에 따른 임대인의 지연 배상금을 6개월간 면제해주는 것인데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임대차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지방 등 집값 하락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청약위축지역'은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 한 군데도 지정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방 역전세난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중이지만 그간 많이 올랐던 집값이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부가 손 쓸 방법이 별로 없다"며 "아직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특례제도 외에 다른 지원방안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역전세난이 지방뿐만 아니라 입주물량이 많은 수도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인 대응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안명숙 부장은 "내년 이후에는 지방뿐 아니라 서울·수도권 주택시장도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며 "과도한 집값 하락 지역은 세입자 등 선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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