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불타는 오라리(里) 1948년 5월 1일 (중략) 불에 탄 자리 그 자리에서 바람 가르며 피어난다. 꽃대를 세우고 4·3꽃 난지꽃."

18일 제주시 오라동 일대에서 열린 도민과 함께하는 4·3역사 순례 행사에 참여한 한 학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 '난지꽃 향기'을 낭독했다.
제주 4·3이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인 '오라리 방화사건'을 노래한 시다.
1948년 4월 3일 4·3이 발발하자 당시 김익렬 9연대장은 같은 달 28일 미군의 강경 진압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72시간 내 전투중지, 무장해제와 하산 이후 주모자들의 신변 보장 등을 합의했다.
그러나 사흘 뒤인 1948년 5월 1일 발생한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마을의 가옥들은 불타버렸고 진행 중이던 평화협상이 결렬됐다.
김익렬 9연대장은 조사 끝에 우익 청년단원들이 저지른 방화임을 밝혀냈지만, 미군정은 무장대의 행위라 보고 5월 3일 총공격 명령과 함께 강경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비극적인 양민학살의 도화선이 된 것이었다.

이날 4·3역사 순례 행사에 참여한 40여명의 도민들은 오라 민오름∼연미마을 불탄 다섯 집∼잃어버린 마을 어우눌∼월정사∼모오동 공회당 알밭 등을 걸으며 비극적인 역사를 돌아봤다.
당시 불타버린 마을에는 7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빌라와 일반 주택이 들어서 과거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지만, 참가자들은 해설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사라지고, 양민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대목에서는 일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지곤 했다.
자신이 발 디디고 서있는 제주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듯 했다.
행사를 주최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너무 가까이 있는 도심 마을이어서 4·3의 아픈 역사를 잊고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치열했던 역사현장을 둘러보며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오라동은 4·3 초기부터 여러 사건으로 유독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25가구 130여명의 주민이 살았던 어우눌 마을은 군경의 초토화 작전으로 잿더미로 변했고 복구되지 못한 채 끝내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이외에도 인근 고지레 마을 역시 하루아침에 모든 집이 불에 타 사라져버렸다.
제주도는 지난 7월 이 일대에 2개 코스, 12㎞ 길이로 '오라동 4·3길'을 만들어 공개했다.
1코스는 총 6.5㎞로 연미 마을회관을 시점으로 조설대·어우눌·월정사 등을 탐방하는 코스로 구성됐으며 2코스는 총 5.5·로 연미 마을회관, 오라지석묘, 고지레, 선달뱅듸 등을 탐방하는 코스이다. (글·사진 = 변지철 기자)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