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에 밀린 부산항 노동자 안전…손놓은 해수부·항만공사

입력 2018-11-21 14:54   수정 2018-11-22 09:38

생산성에 밀린 부산항 노동자 안전…손놓은 해수부·항만공사
올해만 4명 사망, 50명 이상 부상…"노사정 상설기구 설치, 근본대책 세워야"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부산항의 생산성을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이 외면당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해 안전을 무시하는 터미널 운영사의 이기주의와 해양수산부, 항만공사 등 관계 당국 무관심이 그 원인이다.
21일 부산항운노조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부산항에서만 소속 노동자 3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터미널 운영사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4명에 이른다.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노조에 신고한 사고만 집계한 것이고, 신고하지 않은 조합원이나 노조 소속이 아닌 터미널 운영사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1시 50분께 부산 북항 자성대부두에 접안한 배에서 크레인으로 하역하던 20피트 컨테이너 2개가 갑자기 바닥으로 추락해 크레인 아래에 있던 노동자 1명이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항운노조 소속인 이 노동자는 크레인이 트레일러에 실어주는 컨테이너를 차체에 고정하는 장치(콘)를 체결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항운노조는 "배에서 부두로 내리던 컨테이너가 트레일러 대기 장소에 도달하기 전에 크레인과 연결된 줄이 풀리면서 추락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낸 크레인은 1997년에 설치돼 20년 넘게 가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노동청은 같은 시기에 설치한 다른 크레인 2기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부산항 9개 컨테이너 부두 가운데 신항 2부두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번에 사고가 난 자성대부두처럼 크레인 아래에서 콘을 체결하고 푸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사고가 언제든지 재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연간 20피트짜리 기준으로 2천만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부산항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9월 19일에는 자성대부두 2번 선석에서 컨테이너 고정장치를 담은 손수레를 몰고 이동하던 노동자 1명이 야드 트랙터에 치여 숨졌다.
6월 1일에는 부산신항 5부두 내 장치장에서 크레인 레일 정비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크고 육중한 장비들이 개당 20~30t에 이르는 컨테이너를 다루는 항만에서 사고가 나면 치명적인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대표적인 것이 컨테이너를 배에 싣고 내리는 크레인 아래에서 이뤄지는 콘 체결과 제거 작업이다.



안전을 위해선 크레인에서 떨어진 공간에서 이 작업을 해야 하지만 부두 운영사들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거나 공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크레인 아래에서 작업하도록 한다.
부두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야드 트랙터들도 신속한 하역을 위해 시간에 쫓겨 운행하다 보니 과속이나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의 원인이 된다.
대부분 운영사에서는 장치장 곳곳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한 게 대책의 전부이다.
부두에 접안한 배에서 컨테이너를 부두에 내리기 위해선 먼저 컨테이너들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하는 고박장치를 풀어야 한다. 부두에 있던 컨테이너를 배에 실을 때는 다시 고박장치를 체결해야 한다.
래싱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사람들이 직접 도구를 써서 해야 한다.



래싱 작업이 끝나고 노동자들이 배에서 내린 뒤에 컨테이너를 하역해야 하지만 대다수 운영사는 노동자들이 컨테이너 고박장치를 푸는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크레인으로 컨테이너 옮기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 하부에 끼워놓은 콘이나 자갈 등이 배 위로 떨어져 노동자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항운노조 측은 "무거운 쇳덩이인 콘이 떨어지면서 선체나 컨테이너 모서리 등에 부딪혀 주변으로 튀면 배 안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역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동자들의 안전은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배에 높이 쌓는 컨테이너들을 고박한 장치를 안전하게 풀고 체결하기 위해선 안전한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서 작업해야 하지만, 상당수 부두에서는 이 장비가 부족한 데다 이마저 하역에 방해가 된다며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이 장비는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크레인으로 집어서 올리고 내려야 하는데, 그 시간만큼 컨테이너 처리가 늦어진다는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해양수산부와 항만운영 주체인 부산항만공사는 부두 안전관리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항만 내에서 어떤 사고가 몇건이 발생하고 인명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등 기본적인 통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물류협회가 산재처리를 위해 작성하는 자료에 의존해 실태 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토교통부와 달리 해수부에는 항만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부서도 없다. 부두 운영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부산항만공사도 마찬가지다. 2014년에 항만안전기획팀이라는 조직을 신설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해 버렸고 이후로는 안전관리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항의 선석당 생산성은 세계 600여개 항만 가운데 10위였다. 최상위권이다.
부산항은 외국항만보다 훨씬 낮은 하역료와 신속한 하역을 경쟁력을 내세운다.
외국 선사들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며 신속하게 하역해 다른 항만에서 지체된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해주는 부산항 이용을 늘리고 있다.
그 덕에 부산항은 지난해 개항 이후 처음으로 전체 물동량 2천만개와 환적화물 1천만개를 동시에 달성했다. 올해도 수출입 부진에도 환적화물이 8%가량 늘어 전체 물동량이 지난해 대비 5%가량 증가했다.



항만 노동자들은 "오랜 세월 국가 경제의 동맥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안전은 도외시했다"며 "이제는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북항 부두들은 지은 지 오래돼 하역장비들이 많이 낡아 위험이 큰 만큼 이번 사고를 계기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면적인 안전점검을 하고 정부와 노사가 참여하는 상설기구를 통해 위험 요인을 개선하는 등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해수청 관계자는 "항만의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사정 공동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lyh950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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