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뛰고 싶다면'…위로가 필요한 현대인을 위한 소설

입력 2018-11-26 17:05  

'옥상에서 뛰고 싶다면'…위로가 필요한 현대인을 위한 소설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혹독한 회사 생활에 못 이겨 옥상 에어컨 실외기 위에서 눈물을 훔치던 여성이 실외기 밑에서 발견한 편지와 책 한권에는 무슨 내용이 들었을까.
소설가 정세랑의 단편소설 '옥상에서 만나요'는 직장에서 부조리한 노동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늘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나'가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담는다.
주인공 '나'는 회사 언니들의 주술비급서를 물려받고서 절망을 먹는 기묘한 생명체를 불러내 남편으로 맞이한다.
'나'는 주변인들의 절망을 모두 남편에게 먹인 후 상담심리사로 변신하고, 남편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나'는 더는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지 않다고 누군가에게 말한다.
그 누군가는 '나'의 후임으로 회사에 온 '너'이다. "다정하게 머리를 안쪽으로 기울이고 엉킨 실 같은 매일매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주었던" 언니들처럼 '나'는 '너'를 염려하며 희망이 되어 주려 한다.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너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는, 아마도 그 옥상에 자주 가겠지. (…) 밑면에 내가 방수 처리를 해서 붙여 놓은 편지와 비서를 발견할 수 있게.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작가 정세랑이 작품활동 8년 만에 첫 번째 소설집을 선보였다.
'옥상에서 만나요'를 비롯해 총 아홉편의 작품을 묶은 이 소설집은 전작 '피프티 피플'의 묵직한 메시지와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쾌한 상상력 등을 모두 담았다.
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억압적인 가부장제, 경직되고 부당한 조직, 남성 중심적인 사회 등의 부조리를 다루면서 한편으로는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같은 드레스로 연결된 44명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 '웨딩드레스 44'는 한 벌의 드레스를 빌려 입고 결혼한 혹은 결혼할 여성들의 이야기를 44개의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냈다.
낭만적 신화가 아닌 제도로서의 결혼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작품에는 다양한 여성 서사가 등장한다.
이혼한 뒤 집 안의 물건을 모두 처분하는 '이혼 세일'을 열게 된 이재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혼 세일', 효도를 강요하는 아버지와 열등감 가득한 전 애인으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효진의 이야기를 담은 '효진'은 우리 시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영화감독 이언희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에게서 다정한 위로를 받게 된다. 시니컬한 시선이 멋짐으로 포장되는 세계에서 정세랑의 다정함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다. (…) 정세랑이 만나자는 옥상은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사방이 탁 트여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다. 그곳이라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kamj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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