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참사 1년] ② 건물주만 책임?…여전한 '소방당국 책임론'

입력 2018-12-16 06:30   수정 2018-12-16 10:52

[제천 화재참사 1년] ② 건물주만 책임?…여전한 '소방당국 책임론'
"늑장 대처가 화 키워" vs "당시 상황 고려하면 과실 묻기 어려워"
유족들 "책임지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항고장 제출

(제천=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그날도 오늘처럼 살을 에는 추위가 몰아쳐 밖에서 벌벌 떨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작년 12월 21일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어머니(당시 80세)와 여동생(당시 49세), 조카(당시 19세)를 한꺼번에 잃은 민동일 유족협의회 공동대표의 시계는 아직도 참사 당일 시간에 멈춰 있다.



민씨는 화재 당시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을 깎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진상규명은 이제부터'라며 1년 가까이 깎지 않았던 턱수염을 최근 깔끔하게 정리했다.
검찰이 소방지휘부에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화재 참사 당시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화재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불과 1년 전 일인데도 유가족이 겪는 아픔과 슬픔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점점 멀어져가서다.
민씨는 "언젠가는 잊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참사 이후 수많은 이들이 책임을 지고 재발 방지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재 참사로 건물주 등 건물관계자 5명은 1심 재판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청주지법 제천지원은 지난 7월 허술한 건물 안전관리와 인명구조 활동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건물주 이모(53)씨에게 징역 7년과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1층 천장에서 얼음 제거작업을 한 김모(51·구속기소)씨에게 징역 5년을, 그를 도운 관리부장 김모(66·구속기소)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각각 내렸다.



인명구조 활동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2층 여탕 세신사 안모(51·여)씨와 1층 카운터 직원 양모(47·여)씨도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런 판결에 검찰과 피고인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하지만 초기 대응 부실에 휩싸인 소방지휘부에 대한 사법당국의 처분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유족들은 소방지휘부의 늑장 대처가 인명피해를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소방당국이 통유리를 서둘러 깨고 서둘러 진입했다면 2층 여자 사우나에서 발견된 희생자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민 대표는 "화재 당시 유리창만이라도 깨 달라고 소방관들에게 수없이 요청했지만, 소방관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참사 희생자 29명 중 20명이 2층에서 발견됐다.
충북 119 종합 소방상황실에도 '2층 여탕에서 사람이 못 나오고 있다'는 전화가 빗발쳤지만, 현장에서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수사에 나선 경찰도 소방당국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이상민 전 제천소방서 서장과 김종휘 전 지휘조사팀 팀장이 참사 당일 2층에 구조 요청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제대로 구조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소방합동조사단도 효율적인 인력 배분이 이뤄지지 못했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지휘가 미흡했다며 스스로 과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또 목격자·피의자 진술, 화재 당시 현장 CCTV 동영상, 인명구조 상황을 재연한 시뮬레이션도 주요 증거로 들었다.
이런 점을 토대로 두 사람을 업무상 과실치사 협의로 입건해 지난 5월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청주지검 제천지청은 지난 10월 화재 현장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인명구조와 진압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던 당시 소방당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구조 지연으로 인한 형사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혐의없음' 처분했다.
검찰은 일반인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처분 권고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유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소방지휘부의 과실을 인정한 경찰 수사와 소방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맹비난했다.
소방당국이 스스로 인정한 과실 책임을 검찰이 뒤집으면서 논란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제천화재 참사 유족협의회는 지난달 29일 항고장을 제출했다. 항고 이유서도 조만간 낼 예정이다.
민 대표는 "당시 수많은 유족이 현장에서 소방 지휘부의 대처 상황 등을 지켜봤다"면서 "그들의 대처가 적정했는지를 재판에서 한번 따져보자는 것인데 이마저도 못한다면 어떻게 국가를 믿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충북 소방본부 관계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검찰이 불기소처분했지만, 유족들이 낸 항고 절차가 마무리되면 징계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vodcas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