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한파 녹이는 전국의 '얼굴 없는 기부 천사들'

입력 2018-12-20 08:01   수정 2018-12-20 10:02

세밑 한파 녹이는 전국의 '얼굴 없는 기부 천사들'
나물 뜯고 농사 날품 팔아 모은 돈 기탁…16년째 연탄 보내는 이도

(전국종합=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위해 전달만 해주세요"
연말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얼굴 없는 천사들'의 아름다운 기부가 이어지면서 겨울 한파가 따뜻한 온기로 바뀌고 있다.
지난 14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직원에게 "사무실 입구 쪽에 물건 하나가 있으니 잠시 나와보라"고 말한 뒤 이내 전화를 끊었다.
직원이 곧바로 나가보니 사무실 문 앞에는 종이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5만원권 다발과 1천원짜리 지폐 몇장, 녹슬고 때 탄 10원짜리 동전 몇개, 손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현금은 총 5천534만8천730원에 달했다.
편지에는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가르침을 흉내라도 내고자 1년 동안 납부했던 적금을 가난하고 병원비가 절실한 가정의 중증 장애아동 수술비와 재활치료에 사용하기 바랍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익명의 이 기부 천사는 그러면서 "내년에는 우리 이웃들이 올해보다 더 행복하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내년 연말에 뵙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얼굴을 알리지 않고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경남모금회는 봉투에 든 편지 필체와 올해 초 2억6천여만원을 기탁한 기부 천사의 필체가 똑같은 점으로 미뤄 두 사람이 동일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이 돈을 기부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철저히 숨겼다.
당시 경남모금회 계좌에 송금자를 '익명'으로 표시해 2억6천400만원을 보냈다.
우편으로 보낸 통장 4개에 적혀 있는 이름과 계좌번호, 거래은행명도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경남모금회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이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치료비로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 18일에는 경남 거창군 가북면사무소에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고 적힌 봉투를 면사무소 직원에게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현금 50만원이 들어있었다.
가북면 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이맘때가 되면 면사무소를 찾는 또 다른 기부 천사다.
할머니는 앞서 2016년 100만원, 지난해엔 50만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채 서둘러 발길을 돌린 바 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할머니가 매년 나물을 뜯고, 농사일 날품을 팔아 모은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두호 가북면 복지지원 담당은 "기부자의 소중한 뜻에 따라 저소득 아동과 취약계층 주민 난방비로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대전 동구 효동과 판암1동 주민센터에는 화물차 한 대가 도착했다.
짐칸에는 쌀가마니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독지가가 3년 전부터 보내오는 사랑의 쌀이라고 주민센터 측은 전했다.
그는 효도주민센터에 480㎏, 판암1동 주민센터에 520㎏의 쌀을 각각 전달했다.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청 사회복지과에는 한 여성이 불쑥 찾아와 흰 봉투를 내밀고 떠났다.
봉투 안에는 아무런 메모도 없었다. 단지 2만장의 연탄(1천500만원 상당) 보관증만 들어있었다.
기부자는 16년째 이런 선행을 하면서도 신분을 밝힌 적이 없다.
시 관계자는 "봉투를 건넨 분에게 기부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담당자에게 전달만 부탁한다'는 대답만 남기고 곧바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익명 기부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지회 모금액이 작년에 비교해 크게 줄어든 상황이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크고 작은 정성을 모아 전달하는 익명 기부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logo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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