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알프스의 보석, 융프라우

입력 2018-12-31 10:30  

[마이더스] 알프스의 보석, 융프라우




눈의 나라 스위스, 그중에서도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 융프라우로의 여행은 호수 마을인 인터라켄이 출발점이다.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를 거느린 인터라켄에서 묵은 게스트하우스의 창밖 풍경은 얼마나 멋진지 엽서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창밖 경치에 빠져 있는 동안 동행한 언니가 샤워를 하고 오더니 화장실에 물 내려가는 하수구가 없다며 투덜댔다. 샤워 커튼을 욕조 밖에 내놓고 씻은 후 바닥에 물을 뿌려 청소한 것이다.
외국에는 욕실 바닥에 하수구가 없고 욕조에 샤워 커튼만 있는 곳이 많다. 샤워 커튼을 욕조 안으로 넣어야 욕실 바닥으로 물이 안 나오는데 이를 모른 채 사고를 쳤다. 하지만 손님이라곤 우리뿐이라 조금 후 치운다고 미뤘다가 깜빡 잊었다.
인터넷 무선이 약해 1층으로 가려고 컴퓨터를 들고 복도로 나오니 종업원 두 명이 샤워실에서 걸레질을 하느라 바빴다. 아차 싶어 얼른 수건을 들고 가 "쏘리"를 연발하며 같이 닦는데 미안하면서도 웃겼다.
다음날 융프라우에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썰렁했다. 바지 안에 레깅스를 입고 점퍼 안에도 내피를 입어 눈밭에서 굴러도 될 만큼 완전 무장을 했다. 한 시간에 한 번 있는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빙하가 녹아 생겨난 호수를 따라 걸었다.
호숫가에는 세모꼴 지붕의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고, 야생화가 듬뿍 핀 산기슭에는 동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에델바이스를 들고 서 있을 것 같았다. 에메랄드빛 호수와 그림같이 예쁜 집, 세상의 모든 색을 흡수해버린 듯한 은빛 눈 세상, 이 속에서 소박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삶을 즐기는 알프스 사람들….
두 시간여를 걸어 기차역에 도착하니 30여 명이 줄서 있었다. 융프라우로 가는 기차표 중 한국인을 위한 30% 할인권이 있으면 전망대에서 컵라면도 준다. 하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해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다운받았는데 출력할 곳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혼자 온 한국인 여성에게 물어보니 마침 한인 민박에서 두 장을 얻어 왔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망설이는 참이라며 모두 건네줬다.
'젊은 처녀'란 뜻의 융프라우는 수줍은 처녀답게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많지 않다. 인터라켄의 날씨가 화창할 때도 융프라우는 구름과 만년설에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재밌는 점은 융프라우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이유 중 하나가 날씨 변화란 사실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산 위의 날씨조차 융프라우의 매력이란 얘기다.
운 좋게 얻은 할인권으로 빨간 색 산악열차에 올랐다. 산비탈을 오르자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며 본격적인 알프스 여행이 시작됐다. 그린델발트, 라우터브루넨, 벤겐 등의 산악마을을 지날 때는 산타 할아버지가 살 것 같은 100년도 더 넘은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었다. 곧이어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융프라우의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지며 순식간에 눈과 마음을 앗아갔다.
잠시 후 해발 3천454m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에 도착했다. 고산증이 왔는지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걸으면 어지러워 전망대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컵라면을 두 개 받았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그것도 알프스에서 라면의 행복에 빠져 있는데 일본인과 같이 온 한국인 총각이 컵라면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게 보였다. 한국인에게만 주는 라면이라 둘이서 하나를 먹기 위해 젓가락만이라도 더 달라고 하니 1.2프랑(약 1천400원)을 내라고 해서 포기했다고 했다. 챙겨갔던 내 포크를 빌려주며 한국인이란 사실에 여러모로 으쓱했다.
다시 전망대 밖으로 나가니 발아래로 구름바다와 알레치 빙하가 펼쳐졌다. 내가 밟고 선 곳도 만년설이었다. 빙하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지만 눈으로만 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알레치 빙하 밑에 터널을 뚫어 만든 얼음 궁전은 너무 추워 후다닥 돌아보고 나왔다. 그런데도 방문객의 체온으로 매년 조금씩 녹는다고 했다.
전망대에 우체통이 있어 엽서를 써넣고 돌아오는 기차에 다시 몸을 실으니 멋진 풍경 뒤로 행복한 노곤함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니 스위스는 어디나 그림 같다. 나도 이곳에서 살았으면….



오현숙
- 배낭여행가 / 여행작가 / 약 50개국 방문
- 저서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 등
- insumam42@ hanmail.net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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