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둥이 울음 끊긴 제일병원…55년만에 폐원 위기

입력 2019-01-01 07:00  

첫둥이 울음 끊긴 제일병원…55년만에 폐원 위기
저출산 여파 등에 경영난…입원·분만실 이어 외래진료도 중단
평일 응급실 진료만 가능…진료기록 발급창구 북새통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국내 첫 여성 전문병원으로 문을 연 제일병원이 55년 만에 사실상 폐원 수순을 밟고 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영난에 빠진 제일병원은 근근이 유지해오던 외래진료마저 중단했다. 응급실 진료를 제외하면 의료기관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매년 새해 국내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첫둥이' 울음이 울리던 곳이지만, 올해는 분만실이 폐쇄되면서 듣지 못하게 됐다.

◇ 재진 환자 170여명 대기…의무기록 발급창구도 마비
지난해 12월 31일 찾은 제일병원은 한때 진료를 받기 위해 산모들이 몰리던 모습과는 상반됐다.
병원 의무기록 발급창구는 그동안의 진료기록을 발급받으러 온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볐다.
일부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유방암·갑상선암 클리닉에는 이날 170여명의 환자가 몰리기도 했다.
모두 기존 환자들로, 진료기록을 떼기 전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기 위해서다. 진료 예약이 불가능해 이들은 아침부터 현장 접수를 하고 병원에서 대기해야 했다.
20년간 이 병원에서 유방의 물혹 추적 검사를 받았다는 최모(56)씨는 "아침에 접수했는데 점심때도 100명이 남아있다고 한다"며 "다른 날 다시 와야 할 것 같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모아센터에도 병원을 옮기기 위해 상담을 받으러 온 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남편과 상담을 받던 이모씨는 "시험관 아기 시술로 임신 10주에 접어들었다"며 "분만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제일병원을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병원을 옮기게 돼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이날 병원을 찾은 홍모(29)씨 역시 "제일병원에 보관하던 냉동 난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며 "3년 전 병원 명성을 믿고 큰돈을 들였는데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미 많은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제일병원은 지난해 11월 입원실과 분만실을 폐쇄했다. 이후 12월 말에는 외래진료를 중단했다
응급실 운영도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축소 운영하고 있고, 셔틀버스도 새해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다만 병원은 공식적으로 폐원 공지는 하지 않았다.

◇ 국내 첫 여성 전문병원…삼성그룹서 분리
1963년 12월 서울 중구에 문을 연 제일병원은 그동안 국내 첫 민간 여성 전문병원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개원과 동시에 국내 첫 자궁암 조기진단센터를 개소하고 197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산부인과 초음파진단법을 도입하는 등 국내 여성의학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배우 이영애, 고현정 등 유명 연예인이 이 병원에서 출산했고,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 삼성가 3∼4세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1996년에는 설립자의 유언에 따라 삼성의료원에 무상으로 경영권을 넘기면서 삼성제일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병원의 설립자인 이동희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하지만 2005년 다시 삼성그룹 계열에서 분리되면서 설립자의 아들 이재곤씨가 재단 이사장을 맡아 독자적으로 운영에 나섰다.
병원 이름도 삼성제일병원에서 다시 제일병원으로 변경됐다.
이때부터 무리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병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새로운 경영진은 낙후된 병원 건물을 전면 리모델링하고, 여성의학 연구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주산기전문센터, 건강증진센터 등 반세기 동안 쌓아온 경험을 특화하기 위한 다양한 임상센터를 설립했고 이를 위한 건물 증축도 이뤄졌다.
2009년에는 국내 최초로 여성암센터를 설립했고, 제일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기초의학과 임상연구에 대한 투자도 진행했다.

◇ 저출산 여파까지 이중고…병원 매각은 지지부진
무리한 투자와 더불어 저출산 여파도 병원 경영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일병원의 분만 건수는 2014년 5천490건, 2015년 5천294건, 2016년 4천496건으로 매년 줄고 있다.
경영난이 지속하자 병원을 떠나는 의료진이 한두 명씩 생겨났고, 이를 따라 환자들도 병원에 등을 돌렸다.
지난해 6월에는 병원 측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임금 일부를 삭감하자 노조가 반발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당시 취임한 신임 병원장마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해 현재 병원장은 공석 상태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10월에는 간호사를 비롯한 일반 행정직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고, 11월에는 의료진의 월급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병원 측은 경영난의 마지막 돌파구로 병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인수 의사를 밝혔던 동국대 등 투자자들과 협상이 계속 지연되면서 해를 넘겼다.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던 병원 매각마저 지지부진해지자 직원들 사이에는 병원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꺾인 상태다.
퇴사 절차를 밟기 위해 이날 병원을 찾은 한 간호사는 "병원에 애착이 있어 끝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이제는 희망을 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남아있는 직원들이 병원을 옮기려는 환자들의 원무 업무를 돕고 있다"며 "이제는 병원이 정상화 될 것이란 기대감도 무너진 상태"라고 말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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