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취준생의 혹독한 겨울나기…영화 '이월'

입력 2019-01-22 13:19   수정 2019-01-22 14:43

집 없는 취준생의 혹독한 겨울나기…영화 '이월'
김중현 감독 "겉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나름의 사연이 있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곧 따뜻한 봄이 올 듯하면서도 여전히 지독한 추위가 살을 파고든다.
이달 30일 개봉하는 영화 '이월'의 주인공 민경(조민경 분)은 2월을 닮았다. 겨울도, 봄도 아닌 계절을 딱히 규정할 수 없는 묘한 캐릭터다.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밉상인데도, 처지가 하도 딱해 미워할 수도 없다. 측은한 마음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곁에 두기는 꺼려지는 "이상한 아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김중현(44) 감독을 얼마 전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심리적으로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3년 동안 미스터리 상업 영화를 준비하다가 결국 진행이 잘 안 됐어요. 앞으로 영화 찍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취업이 안 된 한 여성이 고된 겨울을 나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김훈 단편 소설 '영자'에서 영감을 받았다.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구준생'의 애환을 그린 소설처럼, 영화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민경의 험난한 겨울나기를 담담하게 쫓아간다.
영화는 민경이 아르바이트하던 만둣집에서 도둑으로 몰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멸감과 분노로 가게를 뛰쳐나오지만, 집에 가서는 속옷에 숨겨둔 돈을 꺼낸다.
민경은 노량진에서 도둑 강의를 듣다가 수강증 검사를 한다는 말에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월세로 살던 반지하 방에서는 보증금마저 까먹어 쫓겨날 처지다. 애인인지, 고객인지 애매한 관계인 진규(이주원)와는 하룻밤을 보낸 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요구한다.






김 감독은 실제 겪었던 여러 인물을 민경 캐릭터에 녹여냈다. 그는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민경 같은 인물에 모욕당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었다"면서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어느 순간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경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 상처를 먼저 주는 인물이자,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 자존심을 세우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갈 곳 없던 민경은 예전에 함께 살던 친구 여진(김성령)의 집을 찾는다.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한 여진이 이제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자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결국 둘의 동거는 며칠 만에 끝나고, 진경은 이번에는 진규의 집에 들어가 그의 일곱살 난 아들 성훈을 돌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도 잠시뿐. 그런 행복에 익숙지 않은 민경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모처럼 찾아온 봄날도 오래가지 못한다.


"죽지 못해 아등바등 살던 민경은 친구의 우울하고 절망적인 모습에 그나마 위로받았는데, 행복한 모습을 보고 비뚤어진 악의와 열등감을 느끼죠. 저 역시 어느 순간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축하해야 할 일인데, 그렇지 못하고…. 저 자신도 민경의 모습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월'은 '소공녀' '죄 많은 소녀'와 같은 작품들과 궤를 잇는다. 집 없이 거리를 헤매거나 극한 상황에 몰린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다. 감독은 "집을 잃어버린 여성이 추운 겨울을 난다고 했을 때 감정적 효과가 더 클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극 중 인물들은 민경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부유하지만 목숨을 끊으려는 친구, 아내 없이 아들과 살면서 성매매를 하는 진규, 엄마가 없어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하는 7살 성훈까지. 김 감독은 "이상하게도 결핍과 문제가 있는 캐릭터들에게 늘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겉으로는 위험해 보이고 곁에 두고 싶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그 인물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며 "제각각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는 만큼 그들을 왕따시키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신호라도 보내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서울예대에서 연출을 전공한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이다. 김태용 감독 '가족의 탄생'(2006) 연출부로 참여했고, 엄태구가 주연한 장편 데뷔작 '가시'(2011)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다.
신인 배우 조민경을 기용해 만든 '이월'은 제22회 부산영화제에서 비전-감독상과 넷팩상 2관왕의 영예를 안았고,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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