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폭피해자에 고개 숙였다…강제징용 한인에 피폭수첩 전달

입력 2019-01-30 10:57   수정 2019-01-30 11:35

일본 원폭피해자에 고개 숙였다…강제징용 한인에 피폭수첩 전달
나가사키시, 남해 배한섭씨 집 찾아 건네…수첩엔 의료·간병비 지급근거 담겨
3년간 힘겨운 소송 끝에 승소…부산·의왕 거주 피해자도 법정싸움서 이겨
뇌경색·언어 장애 배씨 "물질적 보상 보다 진정한 사과를"



(남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너무 오래 걸렸어. 일본 정부가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진정한 사과를 해야지"
경남 남해군 설천면 왕지마을에 사는 일본 강제징용 원폭 피해자 배한섭(94) 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집을 찾아온 일본 나가사키시 관계자에게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이 말을 딸을 통해 대신 전했다.
배 씨는 현재 뇌경색으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지만 힘을 냈다.
일본 나가사키시는 이날 배 씨에게 원폭 피해자에게 의료비와 간병비 지급근거가 되는 건강수첩(피폭수첩)을 전달했다.
배 씨는 일본으로부터 이 건강수첩을 받아낼 때까지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대 당시 일본으로 강제 징용돼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다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때 피폭을 당했다.
배 씨는 일본 정부가 생존피폭자에게 건강수첩을 발급해 의료비와 간병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2016년에야 일본 나가사키시에 건강수첩 교부를 신청했다.
하지만 원폭 투하 당시 시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인이나 기록이 없다는 등 이유로 거부당했다.
배 씨는 굴하지 않고 원폭 피해 지원단체 도움을 받아 2016년 9월 나가사키시를 상대로 건강수첩 교부 신청 각하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3년간의 긴 소송 끝에 지난 8일 일본 나가사키 지방법원으로부터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원고 승소 판결엔 부산에 사는 김성수(93) 씨, 경기도 의왕시에 사는 이관모(96) 씨도 포함됐다.


일본 나가사키시 원폭피폭대책부 시노자키 케이코 원호과장은 배 씨에게 건강수첩을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원폭 피해를 본 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수첩을 교부해 드리게 돼 죄송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분들을 돕고 보살피도록 노력하겠다'는 나가사키 시장의 서한문도 전달했다.
배 씨는 건강수첩과 꽃다발을 받아든 채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는 현재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뇌경색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날 부산에 사는 딸이 쓴 글씨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다.
배 씨 부인은 현재 시각장애가 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가정요양보호사 도움을 받는 상태다.
이날 배 씨를 대신해 딸인 배옥점 씨는 "아버지는 평소에도 일본의 물질적 보상보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며 "앞으로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된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고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배 씨 집에는 배 씨와 함께 3년간 소송을 하며 힘겹게 뛰어온 한국원폭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모임 등이 배 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따뜻하게 격려했다.
이현주 남해군 군민소통팀장은 "배 씨가 지난해까지는 의사전달이 됐는데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며 "배 씨 가족은 좀 더 온전할 때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choi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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