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비극속에서도 피어나는 삶을 향한 의지…'오이디푸스'

입력 2019-01-31 11:04  

절절한 비극속에서도 피어나는 삶을 향한 의지…'오이디푸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사나이 오이디푸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들을 이 세상에 내놓을 운명. 이처럼 불결한 신탁을 받은 그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끝없이 걷고 또 달리지만 결국 제 발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들어간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 대표작인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로 분한 황정민은 전작 '리처드 3세'의 '리처드 3세' 모습을 털어버리고 '오이디푸스'로 새로 태어났다.
이번 연극에서 황정민은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극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그 비통함과 절망을 온몸으로 분출했다.
'테베의 왕'이지만 시작부터 국민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리고, 자신을 옥죄는 저주와도 같은 신탁이 결국 사실로 밝혀지기까지 오이디푸스의 심정 변화를 황정민은 완벽하게 그려냈다.
오이디푸스의 생모로, 잔혹한 운명 속에서 그와 결혼한 비극의 여인 '이오카스테'를 맡은 배해선은 또한 열정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배해선은 연극이 절정을 향해갈 무렵 진실을 알려는 오이디푸스를 말리는 장면에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을 온몸으로 절절히 표현해냈다.
서재형 연출은 다양한 무대장치를 활용, 한정된 무대 위에서 광활한 '오이디푸스' 배경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냈다.
특히 황정민이 테레시아스 역 정은혜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들을 둘러싼 새들의 실감 나는 날갯짓과 울음소리는 연극의 하이라이트였다.



대부분 장면에서 관객은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슬픔에 함께 고통스러워했지만, 마지막 코린토스의 사자 역 남명렬과 양치기가 대사를 주고받을 때는 잠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서재형 연출의 "비극이지만 의지를 지닌 인간으로서 오이디푸스를 그려보고 싶다"는 포부도 잘 구현돼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진실로부터 눈을 돌린 채 테베 왕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 수 있었지만, 오이디푸스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가슴을 네 번 치면서 울부짖고,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연극 내내 끊임없이 걷고 달리던 오이디푸스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끝내 테베 땅을 떠나간다.
눈이 먼 황정민이 자신에게 지팡이를 쥐여준 코린토스 사자에게 이러한 선의가 어린 자신을 살린 것 같다며 고마워하는 대사는 삶을 향한 오이디푸스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후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는 대사를 외친 뒤 지팡이를 짚고 관객들을 향해 다가가는 황정민 모습에서 그가 향하는 곳이 죽음이 아닌 삶임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대사가 가장 많은 만큼 황정민의 목이 쉬어 다른 등장인물들과 대사가 겹치는 일부 장면에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밖에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이자 오이디푸스 삼촌인 크레온 역으로 변신한 최수형, 코러스 장을 맡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박은석의 뛰어난 연기 또한 연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대가 크고 객석과 좀 거리가 있었지만, 배우 한명 한명의 존재감과 개성 덕분에 멀리서도 연극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샘컴퍼니'가 제작한 연극 '오이디푸스'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2월 24일까지 공연된다.


bookman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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