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INF 갈등' 격화에 눈치보는 日

입력 2019-02-03 10:15  

미·러 'INF 갈등' 격화에 눈치보는 日
'안보의존' 美와 '평화협상' 러 사이서 '어정쩡'
"아시아권 군비경쟁 촉발 예상"…사태 관망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미국이 냉전시절인 1987년 옛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의 탈퇴를 선언하고, 옛 소련 체제를 승계한 러시아도 "우리도 조약이행을 중단하겠다"는 식으로 맞받아치자 일본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견지하며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선 이번 사태가 여러 면에서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이나 러시아 중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일 일본 언론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에 조약 탈퇴를 통보하고 6개월 후 조약의 효력이 사라지면 새로운 육상 배치형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개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일본의 안전보장 환경에 큰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INF 조약이 효력을 잃게 되면 중국이 증강하고 있는 중거리 미사일에 맞서기 위해 INF 조약 때문에 그동안 배치할 수 없었던 신형 미사일을 괌 등에 전개하려 한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특히 중국의 미사일이 주일 미군기지를 사정거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핵을 탑재하지 않은 미사일을 일본이나 필리핀에 배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러시아에 INF 조약 탈퇴를 통보한 것이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더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일본은 만에 하나 미국의 신형 미사일이 주일 미군기지에 배치되면 미·중 간 군사적 대립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아사히는 미 랜드 연구소의 제프리 호난 연구원 말을 인용해 일본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15~20분 안에 상대국에 닿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은 곧바로 반격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향후 일본에 신형 미사일을 배치해 중국을 겨냥한다고 해도 러시아 극동지역과 시베리아 일부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 러시아를 크게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는 셈이다.
이런 추정과 가정이 현실화한다면 일본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당장 러시아의 반발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 협상이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러시아와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교전 상대국이었지만 아직 평화협정을 맺고 있지 않다.



아베 총리는 조속히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맺어 태평양전쟁 종전 직전에 러시아가 점령해 현재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을 돌려받는 것을 핵심 외교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으로부터 지상배치형 요격 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 2기를 도입하려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그간의 평화조약 체결 협상 과정에서 순항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우려를 표명하며 부정적으로 반응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러시아 편을 들 수 있는 처지는 더더욱 아니다.
20만명 이상 규모인 자위대를 두고는 있지만 안보체계 전반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노 다로 외무상이 이번 일과 관련해 지난 1일 기자들에게 "미국의 문제의식을 이해한다"면서도 "조약이 종료될 수밖에 없는 환경은 세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것은 그런 복잡한 배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이슈와 관련해 아베 정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중재자 역할을 전망했다.
아시아에는 현재 재래식 병기를 억제하는 조약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미국은 아시아에서 신형 미사일 배치로 중국이 위기감을 느끼도록 한 뒤 협상의 장을 만들어 미·중·러 3개국이 참여하는 신형 미사일 억제 조약을 체결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노 외무상은 "일본은 미국이나 러시아뿐만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관계국과 긴밀히 협의해 군축 환경에 이바지하는 체제 구축에 공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INF 조약의 실효로 아시아에서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키는 군비확장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있어 일본 정부가 중재자 역할에 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군비경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마이니치신문에 "군축에서 역행하는 것은 난처한 일"이라며 "미국과 러시아 외에 중국이 가세하는 새로운 군축체제가 출범하길 기대하지만 중국이 응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닛케이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냉전시대에 옛 소련은 극동에 100기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며 미국과 러시아 간의 미사일 배치 경쟁이 재연하면 일본은 방위계획의 수정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됐다. 사거리 500~1천km의 단거리와 1천~5천500km의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러시아의 조약 위반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러시아의 신형 지상발사순항미사일 9M729 개발·배치는 조약 위반이라며 폐기를 요구해왔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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