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선수에서 스포츠캐스터로…김지호의 파란만장한 도전기

입력 2019-02-14 08:05  

방출선수에서 스포츠캐스터로…김지호의 파란만장한 도전기
삼성 방출→고양원더스 해체→NC 방출
글러브 대신 마이크 잡고 일어난 김지호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09년 KBO리그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한 포수 김지호(33)는 주변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신고선수 신분이었지만 강한 어깨와 영리한 플레이로 두각을 나타냈고, 입단 첫해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프로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팀 내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입단 1년 만인 2010년 방출 통보를 받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생활을 마친 김지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최고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에 입단해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그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라고 곱씹었다.
김지호의 삶엔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2014년 고양원더스가 갑작스럽게 해체하면서 또다시 둥지를 잃었다. 김지호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최악의 상황에서 김지호는 천금 같은 기회를 다시 잡았다.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아 극적으로 NC 다이노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늘은 김지호를 외면했다. 고질적인 팔 부상이 문제였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도 전인 2015년 6월 그는 다시 한번 방출 통보를 받았다. 선수 인생에서 맛본 세 번째 좌절의 순간이었다.
김지호는 쉽게 야구를 포기하지 못했다. 2016년 무적 상태로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다.
kt위즈, 삼성 등 다수의 구단을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으며 재도전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김지호는 "힘든 시기였다. 20년 동안 야구만 해온 터라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야구공을 놓기로 결정한 뒤 그는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것을 차분하게 생각하며 새로운 길을 도모했다.
김지호는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방송일을 하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선수 경험을 살려 스포츠캐스터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등록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선수 시절 때 그랬던 것처럼 처절하게 연습했다.
김지호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내 인생 자체가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지호는 아직 스포츠캐스터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프리랜서 스포츠캐스터로 각종 유소년 대회 인터넷 중계를 진행하며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김지호는 "아직 난 계속 도전을 하고 있고, 꿈을 이뤄가는 중"이라며 "마이크를 들고 야구장을 다시 찾는 그 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원더스 선수 시절 이상훈 코치님이 멘토였는데, 새 시즌 해설위원으로 데뷔를 하시더라"라며 "언젠가 이상훈 코치님과 나란히 앉아 야구 경기를 중계해보고 싶다"라며 씩 웃었다.
cyc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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