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디어, 올드한 시청자를 택하다…KBS '풍상씨'

입력 2019-02-23 08:00  

올드미디어, 올드한 시청자를 택하다…KBS '풍상씨'
'가족은 힘' 메시지, 젊은 세대 외면받지만 중장년층 인기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KBS 2TV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이하 '풍상씨')는 한마디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다.
사고뭉치 동생들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같은 주인공 풍상(유준상 분)을 보면 속이 터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풍상은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이 동생들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간암에 걸리고, 투병 사실을 고백하지도 못한다.
시청자들은 그렇게 순박하기만 한 풍상의 행동거지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하루빨리 풍상이 행복해지길 원한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뻥' 뚫어줄 마지막 사이다 '한 방'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동생들이 맏형 풍상의 깊은 속내를 깨닫고 풍상 씨네 오 남매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 간절함이야말로 '왜그래 풍상씨'를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문제는 이 답답함을 견딜 정도로 '풍상씨'가 젊은 층에게 매력적인 드라마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청년 세대 눈높이에서 '풍상씨'를 찬찬히 뜯어보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도박에 중독된 진상(오지호)이 풍상의 비상금을 털어 한순간에 다 날려도 그가 한 짓은 "우리 가족 다 같이 번듯한 집에서 살아보자고 그런 거야"라는 가슴 찡한 속내 앞에서 순식간에 이해받을 만한 일로 그려진다.
화상(이시영)이 "날 이해해주는 건 그 사람뿐이야"라는 이유로 손찌검을 일삼는 전 남편 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설정 또한 가정폭력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달라진 기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드라마는 은연중에 가족 간 끈끈한 정(情)을 윤리 의식보다 앞세우지만, 핏줄의 의미가 약해지고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가족은 힘'이라는 고리타분한 메시지가 먹힐 리 만무하다.
반면 멀게는 한국전쟁부터 가깝게는 1997년 IMF 외환위기까지, 아무리 세찬 풍파가 몰아쳐도 가족 하나만 보고 버틴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자극한다.

이처럼 주요 시청자층의 연령대가 높은 것은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SBS TV '황후의 품격'과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풍상씨'만의 특징이다.
똑같이 막장 드라마로 분류되지만,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은 주인공 오써니(장나라)가 소현황후와 태황태후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장르극 성격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단순한 이야기 흐름 속에서 적으로 보인 등장인물이 아군으로 둔갑하는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건 흡사 정치스릴러를 보는 듯하다.
이런 특징들로 '황후의 품격'은 시청률 못지않게 높은 화제성을 누려왔다.
1월 첫째 주 이후 '황후의 품격'의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지상파 3사와 CJ ENM 7개 채널 프로그램 중 검색자수, 소셜미디어 버즈량 등을 통해 측정한 콘텐츠의 인기도)는 단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밀린 적이 없다.
'풍상씨'는 정반대다. '풍상씨'는 '황후의 품격' 못지않게 10%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만, 방송을 시작한 1월 둘째 주에 CPI지수 8위를 기록한 뒤 단 한 번도 10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풍상씨'의 높은 시청률과 낮은 화제성은 결국 이 드라마 시청자층이 중장년층이라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와 방송가에 따르면 '풍상씨' 시청률은 설 연휴를 넘기며 10%대 중반으로 치솟았지만, 2049세대를 대상으로 집계한 타깃 시청률은 5% 이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재편되는 미디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중장년층이 올드미디어인 TV를 통해 자신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KBS가 어느 정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KBS 관계자는 "최근 사내에선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우리가 잘한 것에 집중하자는 얘기가 있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1월 KBS 2TV 월화극 '동네변호사 조들호2' 제작시사회장에서 문보현 당시 KBS 드라마센터장 또한 "지난 몇년간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겸손을 배우는 시기였다"며 "이를 토대로 올해부턴 KBS가 잘할 수 있는 드라마를 엄선해 선보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상업적인 종편과 케이블 채널은 구매력을 갖춘 청년 세대에게 어필할 드라마를 만들기 마련"이라며 "'풍상씨' 같은 드라마는 어찌 보면 공영방송 KBS만이 만들 수 있는 드라마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nor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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