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독립선언 예술로 재현, 일본인·작가로서 의무"

입력 2019-02-28 17:30  

"2·8 독립선언 예술로 재현, 일본인·작가로서 의무"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서 영상 '2·8 독립선언서' 선보인 히카루 후지이
재일 베트남 노동자 낭독 통해 오늘의 제국주의 잔재 조명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실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행위는 사기와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니 실상 이렇게 위대한 사기의 성공은 세계 흥망사 상에 특필할 인류의 큰 수치이자 치욕이라 하노라."
푸른색 작업복 차림 사람들이 차례차례 카메라 앞에 등장해 한줄씩 낭독하는 것은 2·8 독립선언서다. 1919년 2월 8일 일본의 조선인 유학생들은 도쿄 한복판에서 조국 독립을 선언했다. 2·8 독립선언은 3·1운동 도화선이 됐다.
28일 찾은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는 100년 전 조선 청년들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3채널 영상 작품 '2·8 독립선언서'를 만든 이는 일본 미술가 히카루 후지이.
"미술관으로부터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 제작을 의뢰받은 뒤, 제작을 결정하기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날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2·8 독립선언을 예술로 재현하는 일은 지금도 남아있는 제국주의 흔적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가 영상 속 2·8 독립선언서를 읽는 작업을 일본의 베트남인 유학생에게 맡긴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에서 베트남인 노동자는 가장 차별받는 존재다. 100년 전 조선 청년의 목소리에 오늘날 베트남 청년의 목소리가 포개지면서 2·8 독립선언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지민 학예연구사는 "작품은 베트남인 목소리로 현재까지 일본 사회에 만연한 불의와 불평등을 소환한다"면서 "한일 양국 관계를 넘어 '이민'이라는 제3의 축을 도입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2·8 독립선언서'는 다음 달 1일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모두를 위한 세계' 출품작 중 하나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한일 이항대립 관계를 넘어 세계적 관점에서 3·1운동 정신을 돌아보려는 시도다. 미술관이 아흐멧 우트, 야오 루이중, 윌리엄 켄트리지, 응우옌 트린 티, 제인 진 카이젠 등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작가들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2·8 독립선언서'와 베트남 작가 응우옌 트린 티의 '판두랑가에서 온 편지'를 함께 배치한 시도가 특히 눈에 띈다. 전자는 일본 경제시스템에서 가장 착취 받는 베트남인들의 현실을 비추며, 후자는 베트남 역사에서 '제거된' 참족 이야기를 다룬다. 국가적인 관점에 매몰돼 과거사만을 곱씹기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려는 다양한 움직임들을 함께 공유할 것을 제안하는 전시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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