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위주' 지방의회 해외시찰, 일본서도 비판여론 비등

입력 2019-03-04 10:39  

'관광위주' 지방의회 해외시찰, 일본서도 비판여론 비등
낮부터 '유서깊은' 맥주홀서 음주, '낮에 맥주 마시는 유럽문화 체험'
해외시찰 10건중 3건 A4지 달랑 한장짜리 보고서, 참가의원 "누가 썼는지 모른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왕복 항공편 모두 비즈니스석 이용. 독일 도착 직후 맥주로 건배. 이튿날은 관광명소 방문. 점심은 유서깊은 맥주홀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즐김."
부자들의 단체 해외관광 스케줄 처럼 보이지만 일본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시찰(?) 내용이다. 지난해 국민의 세금으로 해외시찰을 한 일본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의회는 가장 적었던 2011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실제로 정책입안 등에 도움이 된 시찰은 많지 않다고 NHK가 최근 지적했다.
일본 가가와(香川)현의 한 시민단체는 작년 11월 "가가와현의회 해외시찰여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작년 6월부터 1년도 안되는 사이에 4건의 해외시찰을 하면서 건당 1천만 엔(약 1억 원) 이상의 여비를 썼다며 '4천361만5천922엔의 반환을 청구'키로 했다.
재작년 6월 당시 9일간의 '독일·스위스·이탈리아' 시찰의 경우 "유럽의 관광진흥 및 환경정책 등의 현황시찰 및 이탈리아 파르마시와의 교류촉진"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시찰단이 귀국후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당초 내세운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은 의원이 제출한 9일간의 '시찰보고서'에 적힌 일정이고 오른 쪽은 현지 여행사가 가이드와 운전기사용으로 작성한 일정표다. 보고서에는 '뮌헨시찰'을 한 것으로 돼 있는 시찰 이틀째 일정이 여행사의 일정표에는 '반일(Half day sightseeing tour)관광'으로 돼 있다.


이날 오후에는 지열발전소 시찰이 들어있지만 낮시간에 4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맥주홀에서 술을 마신 사실을 시찰에 참여했던 의원도 시인했다. 나흘째날은 알프스 산맥 기슭의 융프라우를 시찰하는 일정이다. 오전 8시부터 2시간에 걸쳐 등산철도를 이용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해발 3천571m의 등산철도역에 올라 전망대에서 사진촬영을 한 후 3시간에 걸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보고서에는 "관광철도와 철도네트워크의 효과 등을 조사했다"고 적혀 있다.어디서, 누구에게 설명을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철도개통으로 빙하관광과 등산을 쉽게 즐길 수 있게돼 이 지역이 산악관광의 성지로 발전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기록했다.
보고서에 마터호른 산록의 도시를 종일 시찰했다고 돼 있는 닷새째 날 일정이 여행사 일정표에는 '종일 하이킹 가이드(full day hiking guide)로 돼 있어 종일 하이킹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시찰에 참여한 의원 1명은 "메뉴는 여행사가 결정하는건데 왜 우리를 비판하느냐"며 "술을 마신 것도 유럽에서는 낮에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있으니 그것도 시찰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NHK는 맥주를 마시고 관광지를 방문하더라도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면 나름 의미가 있다면서도 확인해 보니 시찰에 참가한 의원 중 4명이 의회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가 불에 타자 곧바로 복원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게 됐다"는 등 시찰을 발언에 인용했다.
한 의원은 시찰경험을 토대로 2차대전중 소실된 다카마쓰(高松)성의 복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34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구해 조사해보니 11개소의 문장과 사진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에서 베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내용중에는 의문이 드는 내용도 있었다. 시찰한 독일 지열발전소와 관련, "가가와현의 재생에너지 도입 촉진 등 환경정책에 참고가 됐다"고 돼 있지만 환경성이 2014년까지 2년간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가와현에서의 지열발전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7년 8월에 5박7일간 실시한 의원 6명의 남캘리포니아와 뉴욕방문은 간담회 안내문 등을 빼면 보고서는 달랑 A4용지 7장이다. 그나마 행사나 시찰 등에 관한 기술은 37줄밖에 없고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 등을 인용한 내용은 아예 없다.
'뉴욕 시내 시찰'이라고 적힌 용지에는 '뉴욕시내 집객력이 높은 4거리에 있는 뉴욕양키스 스타디움과 공원, 그랜드센트렬 역 등의 시설정비 상황 등을 시찰했다"고 돼 있다.
보고서 부실은 가가와현에 국한되지 않는다. 와카야마(和歌山)현 의회가 2017년 실시한 10건의 의원 해외시찰 중 3건의 보고서는 A4용지 달랑 한장이었다.
왜 이런 보고서가 통용되는 걸까. 가가와현이나 와카야마현 의회는 시찰 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된 적은 한번도 없다.(가가와현은 현재 홍페이지에서 공개). 해외시찰 경험이 있는 가가와현 의회 의원은 유권자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든 관심조차 없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지금까지 해외시찰을 2번 다녀왔지만 한번도 보고서를 쓴 적이 없다. 누가 쓰는지도 모른다. 의회 사무국 직원이 썼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NHK는 전국 41개 광역자치단체 의회 의원선거가 내년 4월에 실시된다고 지적, 자기 지역 의원의 해외시찰이 주민 생활향상과 지역발전에 정말 도움이 됐는지 투표전에 한번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는게 좋을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lhy501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