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오영숙 대표 "이주여성 차별하면 우리국민도 해외서 차별받아"

입력 2019-03-06 08:40  

허오영숙 대표 "이주여성 차별하면 우리국민도 해외서 차별받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이주여성 인권,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줘야"
이주여성 폭력 피해와 인종차별 이야기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책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기자 = "한국은 오랫동안 이주 송출국이었고, 지금도 해외 교민 수가 700만을 넘는다. 한국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로, 해외 취업으로 이주하는 나라다. 세계 각지로 이주한 한국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기도 했다. 글로벌시대,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이 처한 조건은 곧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차별) 받을 조건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허오영숙 상임대표는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남편의 계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베트남에서 어렸을 적에 납치혼(일명 '약탈혼')으로 출산을 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혼까지 당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년여간 법정투쟁을 벌였으나 결국 패소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과거 우리나라도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그들 역시 그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많은 투쟁을 벌여 정착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이주여성 인권보호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주여성인권센터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이혼 등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주여성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쉼터이다. 이주여성이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기본권리를 보장받고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2001년에 한국 최초의 이주여성쉼터인 '여성이주노동자의 집'으로 출발했다. 이후 2005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현재 전국에 6개 지부, 6개 이주여성쉼터와 2개 이주여성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폭력과 차별로부터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주여성 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 또 다른 이주여성을 도울 수 있도록 교육과 역량 강화의 기회도 제공합니다. 이와함께 이주여성이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정책을 연구, 개발, 제안해 변화를 이끄는 것도 역점사업 중의 하나입니다."
2017년 1월 총회에서 제2대 대표로 선출된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여성인권운동에 매진해 왔던 산증인이다. 2007년 여름 이주여성센터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고, 내부의 모든 실무를 담당한 뒤 자연스럽게 대표가 된 케이스다. 전임 대표가 창립 이후 17년을 책임졌기 때문에, 그의 대표 선출은 이주여성운동의 2세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세대교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여성인권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그는 작년 한 해 뜨겁게 달궜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우리 사회가 젠더 불평등 문제에서 개선의 기미를 보이긴 하지만 이주여성을 포함한 일반여성이 겪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이주여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다문화가족 내 이주여성 대상 폭력이 극단으로 치닫는 배경으로 체류·귀화제도를 꼽았다.
"이주여성이 귀화하려면 심사 기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걸리는데 이 기간 한국인 배우자의 도움 없이 그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부부관계가 불평등할 수밖에 없고, 폭력이 발생해도 신고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이주여성이 자력으로 안정적인 체류와 귀화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작년 미투운동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이주여성 피해 당사자들이 신분 노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이 대체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지위에 놓인 '약자 중의 약자'인 데다 체류 자격마저 불안해 매우 높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법률 지식이 없고 한국어가 서툴며 아는 사람마저 적어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는 형편이다.
"작년 3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발표회는 이주여성인권센터와 이주여성쉼터협의회가 같이 준비했다. 이주여성들의 체류상 지위와 가족내 위치, 한국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 등을 고려할 때 직접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들이 활동하면서 피해 이주여성이 상담한 성폭력 사례를 묶어서 발표했다. 동시에 이주여성들이 바라는 제도개선 사항도 발표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주여성과 관련 기관, 여론의 관심에 놀라웠다"고 소개했다.
'미투'를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들의 눈물이 정부 당국에 일부 받아들여져 올해 이주여성상담소 5개가 신설될 예정이다. 이주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 '고용허가제'도 개선돼 관련 사업장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긴급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고, 외국인 노동자 지원 기관에 성폭력 상담 전문인력을 지정하는 등 일정 정도의 성과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는 현재 외국인 235만명 중 45% 수준인 105만명 정도의 이주여성이 체류하고 있다. 체류 자격은 엄격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이주여성을 단일한 범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이라는 점, 한국의 제도와 절차, 언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 여성이라는 점, 대부분 아시아계 출신으로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나라에서 왔다는 점 등이 이주여성을 취약하게 만든다.
허오 대표는 외국인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체류 관련 문제라고 지적했다. 체류가 안정적이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가 되고 강제퇴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체류 불안이 심각하다. 이주여성상담센터의 상담에서 체류나 귀화 상담이 다른 상담에 비교해 높다. 이주여성들이 가장 많이 상담하는 다누리콜센터 1577-1366에서도 체류·귀화 상담이 다른 상담보다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이주여성 인권문제와 관련해 그는 "2018년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한국 정부는 결혼이주민이 결혼 상태와 무관하게 체류할 수 있도록 할 것, 기초생활 보장제도의 적용을 받을 것, '한국인+외국인'으로 규정된 다문화가족을 외국인 부부, 동포 가족 등을 포함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확대할 것 등을 권고받았다. 국제사회의 권고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제점이 하나둘 개선되는 것을 보면 보람도 느낀다고 한다.


이주여성인권센터는 각종 폭력을 피해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폭력 실태와 인종차별 이야기를 담은 책을 작년에 펴냈다.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폭력 피해 여성들의 생존 분투기'가 그것이다. 이주여성쉼터가 비공개 시설이고, 접근이 쉽지 않은 주제이기 때문에 이 책이 주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센터측은 기대한다. 쉼터에 있는 이주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과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를 제도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가까이 법정투쟁을 벌이는 등 이주여성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 남편의 계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베트남에서는 어렸을 적에 납치혼으로 출산을 경험한 사례이다. 아동기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경험이 혼인 취소 사유가 됐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결국 패소한 여성은 베트남으로 귀국했고, 이후에도 지원하고 있다. 이 사례는 한국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생활이 어려운 이주여성을 돕기 위해 후원자 찾기에도 적극적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지난 6년 동안 쉼터에서 퇴소하는 이주여성들에게 가전제품을 지원할 기금을 후원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이주여성을 지원할 기금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사업들은 지속할 것이다. 올해는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여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지원방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오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세계여성의 날의 상징은 '빵과 장미'이다. 빵은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이고 장미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주여성센터도 이날 기념행사에 이주여성들과 함께 참여해 오늘날 여성의 현실을 돌아보고 개선방안을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을 각오이다.
이주여성 인권운동에 평생 매달린 동기가 궁금했다. 그는 "이주여성인권센터의 일은 이주여성 당사자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그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좁음, 갇혀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 다양성을 생동감 있게 마주하는 일이다"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주여성 인권 보호에 앞장설 것을 다짐한다.
j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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