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제주 외국투자 1호 '예래단지'는 어떻게 흉물이 됐을까

입력 2019-03-10 08:00  

[줌in제주] 제주 외국투자 1호 '예래단지'는 어떻게 흉물이 됐을까
해안절경에 대규모 공사장 폐허·쓰레기장 방불…수조원대 소송전도 우려
JDC·도, 법 위반해 개발사업…토지주와 갈등 깊고 향후 해법마련 난항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저렇게 많은 시설물이 폐허가 돼 해안가에 방치돼 있다니, 흉물스러워요."
지난 7일 제주올레 8코스(월평∼대평) 인근 서귀포시 예래동 해안 길을 걷던 한 탐방객은 시설물 약 140동이 밀집돼 짓다 말고 방치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올레 탐방객은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훼손할 수 있나?'며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서귀포 해안 절경 사이에 폐허가 된 채 방치된 것은 제주 예래휴양형주거단지(이하 예래단지) 시설물들이다.
예래단지 부지 내부에는 전기시설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쓰레기들도 곳곳에 잔뜩 쌓여 있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2016년 5월에는 30대 남성이 공사가 중단된 예래단지 내에 침입해 구리 전선 36t을 훔쳐 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기철 예래주민자치위원장은 "사업 부지가 공사 중단 이후 오랜 기간 방치돼 우범지대가 됐다"면서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예래단지로 인해 생태마을로 알려진 마을의 풍광이 훼손돼 지역 주민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0월 개발사업 시행승인을 받은 예래단지는 당시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제주의 내일을 꿈꾸게 했던 보물단지였다.
예래단지는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6대 선도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됐다.
6대 선도 프로젝트 중에도 예래단지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맨 처음으로 외국자본의 투자를 받은 사업이다.
그러나 14년이 흐른 현재 예래단지 사업은 좌초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짓다 만 시설물은 마을의 흉물로 전락했다. 수많은 법정공방이 오갔고 앞으로 외국 투자자의 수조 원대 손해배상 소송도 우려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장밋빛 환상만 좇아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파헤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 난개발로 그린 장밋빛 환상
2013년 첫 삽을 뜬 예래단지는 2015년 3월 대법원의 사업 무효 판결로 사업 추진이 중단됐고 그 이후 5개월 뒤인 같은 해 8월 공사가 중지됐다.
당시까지 콘도 등 147실과 판매시설 일부에 대해 공사가 진행됐다. 공정률은 전체 계획의 65%다.
대법원 1부는 2015년 3월 20일 예래단지 용지로 자신의 땅을 수용당한 강모씨 등 4명이 JDC와 제주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를 상대로 낸 '토지 수용 재결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피고 JDC와 도 지방토지수용위의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도와 JDC가 추진하는 예래단지가 옛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등이 정하는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유원지로 지정하는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을 인가한 것은 명백한 하자인 만큼 당연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또 이를 토대로 토지 수용을 결정한 재결사항을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원심인 광주고등법은 2011년 1월 국토계획법에 정한 기반시설인 유원지가 광장, 공원, 녹지 등의 공간시설로, 주로 '주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치하는 오락과 휴양을 위한 시설'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예래단지는 국내외 고소득 노년층을 유치해 장기간 체류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관광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계획됐다.
예래단지는 주민의 자유로운 접근성과 이용 가능성이 제한된 채 숙박시설 투숙객의 배타적 이용을 위한 각종 시설 설치가 주된 사업내용이다.
이에 따라 광주고법은 예래단지가 유원지 시설로 허가를 받았으나 국토계획법이 정한 유원지의 개념 및 목적과 다른 시설이며 유원지의 구조 및 설치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행정당국의 예래단지 사회기반시설 조성 인허가 역시 모두 무효로 결정 났다.
대법원 특별 1부는 지난 1월 31일 도와 서귀포시가 예래단지 사업을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해 상하수도 등 사회기반시설 조성을 추진하도록 한 15개의 인허가 행정처분을 모두 무효로 판단한 상고심 판결을 확정했다.

예래단지 내 원래 토지 소유주들도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전에 뛰어들었다.
토지주 11명은 법원 화해 권고를 수용했다가 재심 소송을 냈고 토지가 수용된 43명과 협의매도자 135명은 소유권이전 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또 협의매도자 2명은 2건의 환매소송을 청구했다.
현재까지 소송을 제기한 토지주는 전체 토지주 405명의 절반에 가까운 191명이다. 이들이 소유했던 토지는 전체 사업 부지의 61%에 이른다.
JDC의 권유로 예래단지 사업에 뛰어든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도 사업 좌초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JDC를 상대로 2015년 11월 3천5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버자야 그룹은 소송이유서에서 앞으로 예래단지 사업을 모두 완료했을 때의 잔존 가치 등을 고려해 추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버자야 그룹은 총사업비 2조5천억원을 모두 투자하고 운영했을 때 수익 등 잠재적인 사업가치까지 모두 포함해 총 5조1천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깊어진 갈등의 골…해법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이 진행되면서 토지주와 JDC, 도와의 갈등의 골도 커졌다.
2010년 광주고법은 당시 토지수용 재결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낸 원고인 옛 토지주들과 피고인 JDC에 화해를 권고했다.
그러나 JDC는 법원의 화해 권고에 응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JDC는 화해를 통해 원고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토지 수용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고, 사업이 불법임을 알리기 위해 소송을 냈다는 토지주와 서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처음 대법원판결이 난 2015년 3월 말 이후에도 JDC는 토지주들과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대법원판결에도 불구, 예래단지 공사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
예래단지 공사는 같은 해인 2015년 8월 토지주들이 낸 공사중지 가처분이 법원에서 인용되면서 중지됐다.
토지 수용 재결 취소 소송을 내 승소한 진경표(54·서귀포시 예래동)씨는 "2015년 토지주 등 주민들은 예래단지 문제로 도 및 JDC와 끊임없이 대화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면서 "대법원의 사업 무효판결 이후에도 도와 JDC는 사과는 커녕 제주도특별법을 개정해 끝까지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도와 JDC는 대법원 특별1부의 판결이 나와 사업이 완전히 좌초된 이후인 지난달에 들어서야 대화 의지를 밝혔다.
도와 JDC는 원래 토지주들, 예래마을 대표단 등과 함께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협의체를 통해 예래단지 용지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사업이 계속 좌초 상태로 남을 경우 우려되는 점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탈출구를 찾을 계획이다.
김기철 예래주민자치위원장은 "대법원판결로 예래단지 사업이 불법적으로 이뤄졌음이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토지주와 마을주민에게 도와 JDC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옛 토지주 진경표씨는 "토지주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도와 JDC가 개발사업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의 개념과 목적을 살리는 것을 전제로 사업 추진에 합의하겠다"고 말했다.
문대림 JDC 이사장은 지난 7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JDC가 토지개발에만 치중했고 관리자 및 운영자로서 역할이 부족한 상태로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며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어 풀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예래단지에 초고층 빌딩이라든가, 카지노 등 이 같은 계획으로는 승산이 없다"며 "계획 변경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주민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 예래단지 경과
JDC는 2005년 10월 제주도로부터 예래단지 개발사업 시행승인 및 도시계획시설(유원지) 실시계획을 인가받았다.
JDC는 외국인 투자 1호로 유치한 버자야 그룹과 2008년 8월 지분율이 각각 19%, 81%인 합작법인 버자야제주리조트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버자야제주리조트가 사업자가 돼 2009년 10월 JDC로부터 전체 개발 사업 용지를 사들였다.
버자야제주리조트는 1조8천억원을 투자해 레지던스호텔(50층·높이 240m), 리조트호텔(38층·높이 170m), 카지노호텔(27층·높이 146m) 등 초고층 건축물과 콘도미니엄, 메디컬센터, 쇼핑시설 등을 갖추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고 도 도시계획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예래단지는 2009년 11월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 고시됐고, 2010년 11월 관광단지 지정 및 조성계획으로 승인됐다.
2011년 12월에는 기반시설 조성 공사가 완공됐다.
버자야제주리조트는 이후 사업계획을 두 차례 더 변경해 예래단지를 '제주에어레스트시티'로 조성한다며 2013년 3월 첫 삽을 떴다.
총 10단계 공사 중 1단계 사업으로 콘도 147채, 상가 96동을 지어 분양하는 곶자왈빌리지 공사를 진행했다.
2015년 3월 대법원에서 사업 무효 판결이 났으며 같은 해 8월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 1월 대법원은 행정기관이 내준 예래단지의 15개 인허가도 모두 무효로 판결했다.
토지주들은 현재 옛 토지에 대한 수용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고 일부는 소유권 이전 소송을 진행 중이다.
ko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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