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 개막 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
현대 서양음악과 전통 일본예술의 공생…동양적 색채 물씬

(통영=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일본 고대 혼령과 중동 출신 난민. 지난 29일 오후 10시 봄 바다를 바라보는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무대 위에는 시공간을 뛰어넘은 두 여인의 신비로운 만남이 그려졌다.
이날 개막한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오페라인 '바다에서 온 여인'(2017) 이야기다. 윤이상의 수제자였던 일본 작곡가 도시오 호소카와의 작품으로, 이번 무대가 아시아 초연이다.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를 대표하는 '후타리 시즈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중동 출신 난민 여인 '헬렌'이 나흘간의 밀항 중 동생을 잃고 해안가에 도착해 일본 헤이안 시대의 혼령 '시즈카 고젠'(시즈)을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궁정 무희였던 시즈 역시 연인이었던 사무라이가 떠난 뒤 그의 아이까지 잃은 슬픔을 간직한 인물이다. 이 두 여인은 수 세기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치유와 공감을 나눈다.

희게 화장한 얼굴에 비녀로 쪽진 머리를 한 실제 노 가수 아오키 료코가 '시즈'를, 소프라노 사라 베게너가 '헬렌'을 연기했다. 이질적인 색채의 두 가수 노래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졌다.
혼령, 영혼 빙의, 난민 문제 등 쉽지 않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전쟁의 비극,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 연대를 통한 위로 등 현대의 관객들에게 와닿는 지점이 적지 않았다.
벨기에 연출가 토마스 이스라엘의 비디오아트를 결합한 연출이 이 낯선 오페라를 매혹적으로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대 세트는 한 그루의 나무와 그에 걸린 두 폭의 반투명 막, 해안가의 자갈 정도뿐이었지만 공연 내내 쓰인 영상이 다양한 시공간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빙의와 같은 초현실적 순간도 반투명 막을 활용해 두 배우의 얼굴을 겹치는 방식 등으로 무리 없이 표현했다.

호소카와의 음악은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사용했음에도 상당히 동양적인 색채가 짙었는데, 스승이었던 윤이상의 음악기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윤이상이 한국 전통음악과 서양 아방가르드 양식을 결합한 것처럼 그의 음악에도 현대 서양식과 전통 일본 양식이 공생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한 음을 길게 늘어뜨리거나 끝부분을 낚아채는 시도가 이어졌으며 '노' 공연 특유의 느린 선율과 양식미를 차용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호소카와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동양의 한 음(音)은 마치 붓에 먹을 묻혀 그리는 하나의 선과 같다"며 "두꺼워졌다가 얇아지고 꺾이기도 하는 것처럼 끝없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곡가가 최근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 '물'의 이미지와 소리가 이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해변에서 만난 두 여인의 만남을 표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물방울 소리 같은 것이 번지는데 이는 비극에 스며드는 치유의 선율로 들렸다.
지휘자 성시연이 이끈 TIMF앙상블은 이 작품의 동양적 색채와 현대적 느낌을 동시에 잘 살려냈다.
오페라 공연 전에는 같은 작곡가의 '여정Ⅴ'가 함께 공연됐는데, 별개의 작품임에도 오페라 서곡 같은 느낌을 줬다. 플루티스트 김유빈은 일반 플루트뿐 아니라 피콜로, 알토 플루트, 베이스 플루트 등 총 4개의 악기를 번갈아 사용해가면서 동양 목관악기 기법을 연상시키는 연주를 들려줬다.
이 작품은 오는 31일까지 두 차례 더 무대에 오른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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