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때도 살아남은 알제리 부테플리카의 초라한 퇴장

입력 2019-04-03 11:07  

'아랍의 봄' 때도 살아남은 알제리 부테플리카의 초라한 퇴장
'7년 내전' 후 국민통합 기여했으나 3선 이후 국민 분열 초래
높은 실업률 등 경제난에 변화에 대한 열망, 부패 등도 한몫
1999년 첫 대선 당시 강력한 지지기반이던 군부도 등돌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알제리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82)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사임서를 제출하면서 20년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아프리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철권통치자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알제리 독립 투쟁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부테플리카는 집권 초기 오랜 내전으로 찢긴 국가의 통합을 주도하며 정국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속한 경제난에다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 변화에 대한 열망 등이 응집된 가운데 5선에 도전하겠다는 '노욕'에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면서 결국 쫓겨나다시피 권좌에서 물러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1937년 모로코에서 태어난 부테플리카는 1956년 프랑스 식민통치에 맞서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국민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1962년 알제리 독립과 함께 들어선 아메드 벤 벨라 대통령 정부에서 불과 25세의 나이에 체육관광장관직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외무장관에 임명돼 군부 정권 때인 1978년까지 15년간 알제리의 외교 업무를 총괄했다.
이후 정권 교체기에 정치적 기반을 상실한 채 스위스 등에서 외유 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1999년 군부의 지지 아래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20만명의 사망자를 낸, 이슬람 반정부 무장세력과의 '7년 내전'이 종식된 직후였다. 벤 벨라 초대 대통령 이후 37년 만의 첫 문민 대통령이 된 것이다.



당시 야권으로부터 군부 독재 시절 요직을 두루 거친 구체제 인사로 비판받기도 했으나 취임 이후 이슬람 반군 수천 명을 사면하는 등 적극적인 국가 통합 정책을 펴 높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했고 이는 2004년 연임 성공의 발판이 됐다.
하지만 이후 그는 장기집권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권여당의 지지 아래 2008년 11월 대통령직 연임을 한차례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폐지하며 '종신 대통령'의 길을 텄고, 이듬해 4월 90%가 넘는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개헌에 반대하는 야권 일부의 불참 속에 치러진 '반쪽짜리' 대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심각한 여야 간 갈등 속에 선거 당일에는 전국 곳곳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부테플리카는 권좌를 유지하긴 했지만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 섰다. 사회 분열은 가속화했고, 반대파는 점점 늘어갔다.
그는 극심한 폭력과 부정 선거 의혹 속에 2014년 4월 77세의 나이에 또 한 번 임기를 연장했다.
2011년 북아프리카 전역을 휩쓴 '아랍의 봄' 시민 혁명으로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등의 장기집권 지도자들이 차례로 축출되는 가운데서도 정권을 지킨 것이다. 이에 대해 AFP통신은 19년간 이어진 국가비상사태 해제와 오일 머니를 이용한 봉급 인상 등의 선심책으로 '폭풍우'를 이겨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부테플리카의 건강 이상설도 이즈음 흘러나왔다.
부테플리카는 2013년 4월 뇌졸중 증세로 프랑스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다가 80일 만에 돌아왔다.
4선을 앞둔 유세 때도 좀처럼 공개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대선 투표 당일에는 휠체어를 타고 투표소에 등장하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워 보이는 건강 상태라는 의심이 팽배했다.
이런 가운데 다시 5선 도전을 선언함으로써 국민의 반발을 촉발한 것이다.
그의 5선 도전에 대한 반대 이면에는 장기간 지속한 경제난도 한몫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5선 반대 시위에는 특히 일자리 문제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참여가 두드러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제리 젊은 층의 실업률은 25%가 넘는다. 살인적인 실업률 속에 고국을 등지고 해외로 떠나는 젊은 층의 '탈출 러시'도 지속됐다.
여기에 집권층 내에 만연한 부패도 국민들이 부테플리카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한 기업인은 알제리 국영 APS 통신에 "과거 알제리의 범죄조직들이 정권 고위층의 측근들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비판했다.
부패에 연루된 부테플리카 측근들은 최근 출국이 금지된 채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1999년 첫 대선 당시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던 군부가 이번에는 국민적 분노를 등에 업고 부테플리카의 5선 도전에 반기를 들면서 사실상 정권 연장에 대한 그의 의지를 꺾어놨다.
군부에 의해 대통령이 되고 군부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정치 분석가 라쉬드 틀렘카니는 "부테플리카가 내전 이후 국가적 화합을 이뤄내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재선을 끝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고 총평했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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