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 "소리 만드는데 몰입…재즈의 새로운 맛에 흥미진진"

입력 2019-04-07 13:06  

나윤선 "소리 만드는데 몰입…재즈의 새로운 맛에 흥미진진"
메이저 음반사에서 낸 10집 '이머전'…자작곡 6곡 담아
즉흥 녹음 대신 실험적인 방식으로 사운드 디자인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종잡을 수 없어 반전 묘미가 있다. 낭창하게 휘다가 거칠게 뻗고, 기품있게 스미다가 발랄하게 튀어 오른다. 재즈 가수 나윤선(50)의 목소리는 수시로 표정을 바꾼다.
달콤한 스릴은 보컬에서만이 아니다. 재즈가 '즉흥'의 음악이라지만, 흥미로운 소리를 촘촘히 배치한 사운드의 변화무쌍한 전개는 드라마틱할 정도다.
나윤선이 최근 발표한 10집 '이머전'(Immersion·몰입)은 러닝타임 44분 18초가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된다.
그간 재료 고유의 맛을 내는데 집중한 셰프가 요리의 알록달록한 색감을 살리고 플레이팅까지 신경 쓴 느낌이다.
"카레 가루, 고춧가루, 피시 소스까지 다 넣어 맛도, 색감도 다양하고 예쁘게 플레이팅 해 내놓은 요리랄까요?" 최근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나윤선은 10집을 이렇게 빗댔다.
변화를 견인한 것은 새로운 작업 방식이다. 지난 20년간 재즈 고유의 맛을 살리고자 밴드 연주자들과 라이브로 한 번에 녹음했다면, 이번엔 마치 실험하듯 갖은 소스를 넣어보며 창의적인 레시피로 맛을 구현했다.
그는 "보통 라이브로 이틀이면 녹음이 끝나는데, 이번엔 스튜디오에서 사운드를 바꿔가며 시간을 들여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전의 천군만마가 된 프로듀서는 2014년 니나 시몬 헌정 음반으로 인연을 맺은 프랑스 작곡가 겸 멀티(피아노, 기타, 퍼커션, 마림바) 연주자 클레망 듀콜(38). 여기에 재즈 드럼과 퍼커션까지 가능한 프랑스 첼리스트 피에르 프랑수아 티티 듀퍼(35)가 가세했다.
세 사람은 파리 스튜디오에서 2주간 새로운 소리를 찾는데 몰두했다. 몇평 안 되는 공간은 다채로운 악기로 사방을 빙 둘렀다. 나윤선은 "어쿠스틱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좀 색다른 피아노·첼로 소리, 기타 리프….
고정관념을 깨고 피아노 건반 여러 개를 테이프로 붙여 놓고 주먹으로 내리치거나, 첼로를 기타처럼 안고 피치카토 주법으로 뜯어 연주했다. 오래된 피아노 페달에 기름칠을 하지 않아 '끼익끽' 나는 소리도 의도한 듯 숨어들었다.
사람 몸도 악기로 활용해 소리 출처를 단박에 가늠하기 어렵다. 손가락을 튕겨 빗소리를 만들고, 숨소리는 훌륭한 바디 퍼커션이 됐다. 전자 사운드로 착각할 정도로 변형된 소리가 깨알같이 박혔다.


사운드 디자인에 탁월한 개성을 보여준 클레망 듀콜은 "나윤선 자작곡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흔쾌히 작업을 수락했다.
나윤선은 앨범 13곡 중 6곡을 손수 만들었다. 작년 초 2주간 프랑스 브르타뉴에 머물며 만든 15곡 중에서 골랐다. '영감을 위해 어딘가로 떠나는 스타일이 아니"라지만 환경을 바꾼 영향인지 한층 팝적인 멜로디가 포개졌다.
'인 마이 하트'(In my heart)는 스타카토로 낸 다양한 음을 더블링해 몽환적인 오리엔탈 사운드로 전이됐다. 가사는 11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시를 인용했다. 화수분처럼 사랑의 감정이 넘친다. 우연히 미국 뉴욕 서점에서 루미의 시집을 산 그는 시대와 괴리 없이 간결하고 위트있는 시구에 반했다고 한다.
마칭 드럼이 경쾌한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타악기와 피아노가 변주하는 '더 원더'(The Wonder), 아련한 사운드가 위로를 안기는 '인빈서블'(Invincible)에는 다국적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시적인 노랫말이 입혀졌다.


"재해석의 재미를 즐기는" 그는 이번에도 정교한 세공을 거쳐 명곡을 새 디자인으로 내놓았다. 장르 경계 없는 선곡은 폭넓은 해석력과 보컬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마빈 게이의 '머시 머시 미'(Mercy Mercy Me)는 흑인 음악 산실인 미국 모타운레코드 60주년을 맞아 골랐다. 마빈 게이 버전은 환경 오염을 개탄한 가사와 달리 흥겨운 템포에 감미로운 보컬이 매력. 나윤선은 묵직한 선율에 여러 겹 보컬을 쌓아 메시지와 보조를 맞췄다.
샹송 '상 투아'(Sans toi)는 파리에서 프랑스 프로듀서와 처음 작업하며 떠올렸다. 프랑스 유학 초기 봤던, 프랑스 누벨바그 선구자인 아녜스 바르다 감독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삽입곡이다. 지난 1월 타계한 영화 음악 거장 미셸 르그랑이 작곡하고 지난달 28일 별세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가사를 썼다.
그는 "영화에 옛 파리 모습이 담겨 정말 멋있었다"며 "두 분이 살아계실 때 작업해서 앨범이 나오면 보내드리려고 주소도 받아놨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신들린 스캣(가사 없이 목소리로 연주하듯 음을 내는 창법)은 감상의 정점을 찍는다. 스페인 작곡가 이사크 알베니스의 기타 연주곡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서 보컬은 첼로와 에너지 강약을 조절하며 경쟁하듯 질주한다.
실험실 같던 스튜디오에서 경험한 두 연주자와의 강렬한 교감은 나윤선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소리를 찾고 촘촘히 쌓아 올리며 작업한 것이 처음이어서 애가 된 느낌이었어요. 이 나이에 뭔가를 새롭게 할 수 있겠느냔 생각을 바꾸게 됐죠.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10집은 메이저 음반유통사에서 발표한 첫 앨범으로 유럽을 넘어 본격적인 도약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재즈 전문 레이블 액트(ACT)에서 앨범을 내며 유럽의 재즈 보컬로 거듭난 그는 최근 워너뮤직그룹과 월드와이드 계약을 했다.
이 앨범은 지난달 프랑스에서 먼저 출시돼 현지 재즈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는 내년까지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도는 '이머전' 월드투어도 진행한다. 앨범 프로모션을 마치고 이달 출국하는 그는 12월 국내 투어를 할 즈음 귀국한다.
"제게 재즈는 여행이에요. 겨울 짐을 내려놓고 다시 여름옷으로 짐을 싸는 느낌이죠. 아직도 배울 게 있고 갈 데가 있는 게 감사해요. 가족에겐 미안하지만 저는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 가장 마음이 안정돼요."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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