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려함 속에 역사의 아픔 간직한 용산 미군기지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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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4-10 12:00   수정 2019-04-10 13:30

<르포> 화려함 속에 역사의 아픔 간직한 용산 미군기지 벚꽃길

<르포> 화려함 속에 역사의 아픔 간직한 용산 미군기지 벚꽃길

용산기지 버스투어…일본군 건너다니던 만초천변 무심히 화려한 벚꽃길

"건물 975동 중 81동 존치" 용역결과 나와…하반기 대국민 의견수렴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울창한 왕벚나무가 많아 해마다 봄철에는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남산 자락에서 흘러내려 용산 기지를 통과해 삼각지로 흐르는 개천인 만초천이 복개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올해도 초봄을 맞은 만초천 변 벚꽃이 눈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광경에도 일제 군국주의 침탈의 아픈 역사가 무심히 간직돼 있었다.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은 지난 9일 미군의 협조를 얻어 용산 미군기지 버스 투어에 동참할 수 있었다.

용산 기지에는 일제 때부터 미군정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인 역사적인 건물이 많지만 이번 투어는 국토부가 벚꽃철을 맞이해 특별히 벚꽃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코스를 짰다.

기자단은 오후 2시께 일반 관람객들과 함께 버스 3대에 나눠타고 용산 미군기지 내로 진입했다.

투어 시작 지점은 용산 미군기지 14번 게이트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은 "14번 게이트를 시작점으로 잡은 것은 이곳에 과거 일제 침략의 역사를 대변하는 일본군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군사령부 건물은 한국전쟁 때 공습으로 파괴됐다. 하지만 바로 옆 일제 방공작전실은 광복 이후 미7사단 벙커 등으로 쓰였고 현재는 사우스포스트 벙커로 불리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 한국전쟁 때 한강다리 폭파 결정이 이뤄졌다고 한다.

기자단은 버스를 타고 기지 내를 이동하며 중요한 지점마다 내려서 직접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직접 둘러본 미군 기지는 바깥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구릉지도 꽤 많았다.

김 실장은 "공원으로 조성되는 면적이 243만㎡로 여의도 면적에 육박한다"며 "구릉이 많은 것은 이곳이 둔지산(屯芝山) 자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래 구한말 용산은 지금의 마포 인근에 있었고 이곳은 둔지산 일대였다.



하지만 1908년 일본군이 이곳에 무단으로 주둔하면서 용산 기지라고 부르기 시작하며 지명 자체도 바뀌어버렸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기지를 이동하면서 미군기지 담장 너머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주변을 에워싸는 아파트 등 고층 건물과 한적한 기지 내부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미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 중이어서 미군기지 내부는 한적한 미국의 어느 시골동네 같았다.

벚꽃길은 한미연합군사령부 건물 뒤편 만초천 주변에서 시작해 기지를 나가는 대로까지 펼쳐져 있었다.

용산 기지에 벚나무가 많은 것은 1908년 일제가 이곳에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벚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해군기지가 있었던 경남 진해에 벚나무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벚꽃도 그렇지만 만초천 자체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청계천 등 서울 시내 다른 계천이 1960년대 이후 복개됐던 것과 달리 만초천의 용산기지 내부 300m 구간은 복개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옛날 만초천에는 민물게가 많이 잡혀 밤에는 주민들이 게를 잡으려고 벌건 횃불을 켜고 만초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그랬던 이 만초천에도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만초천을 건너는 다리에는 큰 기둥 두개가 있었는데, 일제 때 이 기둥에 문이 달려 일본군 보병연대 입구로 쓰였다고 했다.

부대 입영식과 퇴영식이 열리면 일본군이 이 문을 통과해 기지를 드나들었다고 했다.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 기록사진에도 일본군이 이 만초천 다리를 통과해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만초천 주변에는 옛일을 잊은 듯 봄 내음을 내뿜는 왕벚꽃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벚꽃길은 이 만초천을 이어 기지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까지 왕복2차로 도로로 연결됐다.

이 도로는 용산 미군기지에서 벚꽃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이 길을 따라 과거 일본군이 기지를 출입하며 행진했다는 말을 들으니 아름답다는 느낌은 잠시 애잔함과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특히 벚꽃 무리는 바로 옆 기지 담장을 감싸고 있는 철조망과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자단은 과거 일본군이 영창으로 사용한 위수감옥도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위수감옥은 이후 미군도 영창으로 썼지만 김구 선생 살해범 안두희와 '주먹' 김두한도 이곳을 거쳐 갔다.

최근까지는 미군 의무부대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관람객을 위한 임시 화장실로 개조됐다.

위수감옥이야말로 100여년의 역사를 켜켜이 간직하고 있었다.

주변 담장은 잿빛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는데,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곳에는 일본군이 지은 벽돌벽이 보였다.

일제시대 벽돌벽이 낡아 보수하려고 미군이 벽에 철망을 대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덮어놓은 것이다.

미군이 과거 일본 강점기 건물을 재활용했기에 건물에는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별 문양이다. 별은 일제 군국주의를 상징하는데, 위수감옥의 환기구 덮개도 별 문양으로 돼 있었다.

위수감옥 외벽에는 한국전쟁 때 새겨진 총탄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위수감옥이나 벚꽃길이나 100여년간 일제와 미군이 주둔하며 쌓은 역사의 흔적이 무심하게 노출돼 있었다.

투어에 참가한 이경원씨는 "용산기지가 생각보다 매우 크고 아름다운 곳도 많은 것 같다"며 "잘 보존할 것은 지키면서 국민을 위한 좋은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작년 말까지 미군기지 조성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이 결과를 토대로 하반기에 본격적인 국민 여론 수렴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용산기지에는 총 975동의 건물이 있으며, 연구용역에서는 위수감옥 등을 비롯한 81동은 존치하되 53동은 철거 여부에 대한 재검토를 벌이고 나머지는 철거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 방안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은 외부 연구용역 결과일 뿐, 하반기 대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얼마든지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bana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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